왕실 결혼식 때 펴던 '모란 병풍'… 귀한 몸 납셨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상설전시관 2층 회화실에서 6월 20일까지 조선시대 모란 그림을 전시하는 '방 안 가득 꽃향기' 전(展)을 연다. 박물관이 소장한 지 89년 만에 처음 공개하는 10폭짜리 대형 모란병풍 1점과 모란도 10점을 함께 선보이는 전시다.

부귀의 상징인 모란(牡丹)은 화려한 색상과 풍성한 자태 때문에 '꽃 중의 꽃'[花王]으로 불리며 폭넓은 사랑을 받았고, 모란을 그린 그림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모란병풍은 왕실의 혼례인 가례(嘉禮)나 제례(祭禮) 등 주요 궁중의례 때 사용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번에 공개되는 10폭 모란병풍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 박물관이 입수한 것으로 전시를 위해 지난 반년간 보존처리를 거쳤다. 펼쳤을 때의 가로 길이가 5m80, 높이는 1m94에 이른다. 10폭의 화면이 끊어짐 없이 한 바탕을 이루는 가운데 붉은색·분홍색·노란색 모란이 언덕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을 감칠맛 나는 붓 터치에 담았다. 푸른 바위 사이로 툭툭 불거진 붉은 모란이 탐스러워 눈길을 끈다. 폭마다 모란이 단독 혹은 괴석(塊石)과 함께 그려져 독립적이고 도식적인 화면을 이루는 19~20세기의 '궁모란병(宮牡丹屛)' 이전 단계의 양식을 보여준다. 박물관측은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제작 당시의 병풍틀과 장황의 비단 배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서 "모란도의 전개 과정 및 특성을 이해할 수 있어 회화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이 밖에도 조선후기 문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심사정(沈師正)·강세황(姜世晃)의 모란도를 비롯해 화가 남계우(南啓宇)의 장식적인 채색 모란도, 박물관이 최근 구입한 조선후기 화가 이한철(李漢喆)의 모란도,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글·그림·글씨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불렸던 허련(許鍊)이 먹으로만 그린 묵(墨)모란도가 함께 걸린다. 허련은 일흔이 넘도록 전국을 떠돌며 부유한 중인들의 주문을 받아 모란을 숱하게 그려 별명이 '허모란(許牡丹)'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