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베스트셀러', 빈 수레가 요란한 크로스오버의 향연

[스포츠조선 T―뉴스 이진호 기자] '크로스오버'. 1980년대 초 미국 컨트리 가수들이 대거 팝 차트에 진출하며 음악적 의미로 파생된 단어다. 사전적 의미로는 서로 다른 장르가 교차한다는 뜻. 이 단어는 엄정화 주연의 영화 '베스트셀러'를 통해서 그 음과 영이 잘 드러난다.

'베스트셀러'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인 표절을 바탕으로 미스터리다. 하지만 서스펜스, 스릴러, 호러 등 다양한 장르가 한데 뒤섞여 있다. 최근 국내 영화의 어려운 제작 여건 속에서도 여배우 엄정화를 원톱 카드로 내세워, 4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쏟는 등 한국 영화 재개의 신호탄을 올리려 했다.

여러가지 장르를 한번에 다루고 싶었던 감독의 욕심이 컸기 때문이었을까? '베스트셀러'는 봄철 비빔밥으로 비유하자면 신선한 산나물과 야채 등 최상의 재료가 얹어졌지만, 정작 밥은 빠진 황당한 느낌을 준다. 표절에 대한 작가의 고뇌를 담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추적하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분투를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 목적과 의도가 불분명하다.

영화적 흥미만 놓고 따진다면 '베스트셀러'는 어느 정도 안전한다. 슬럼프에 빠진 한 예술가의 심리적 갈등과 괴로움을 스릴러 공식을 모범적으로 활용해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엄정화의 날선 연기는 일품이었다. 또한 빠른 편집과 시원하고 깔끔한 영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향 효과도 흠잡을 데 없었다. 류승룡, 조진웅 등 조연들의 호연과 에너지 넘치고 충만한 신들도 시선을 사로잡을 만했다. 다만 이 영화가 내세운 표절이란 소재는 소리만 요란했던 빈수레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표절에 대한 철학도 메시지도 애매모호한 허무한 결말은, 마케팅 수단을 위한 도구로만 이용됐다는 느낌을 준다.

여러 나물들의 맛을 버무려주는 밥의 구실처럼 바탕에 깔린 중심이 없는 영화는, 전 배우들의 호연을 충분히 살리는 데 실패했다. 단지 공포만을 즐기고자 하는 관객들을 위해 여름 납량물로 나왔다면 좋았을 것을. 꽃샘 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에 보기보다는 한여름 DVD로 빌려 보는 게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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