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그린 존] 거짓말의 진화...부시를 쏘다

2003년 3월 20일. 바그다드에 미사일 폭격이 가해지면서 이라크전이 발발한다. 전쟁의 대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세계 평화유지다. 그러나 전쟁 발생 시점까지도 대량살상무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일이 군대의 중요한 임무가 된다. 영화의 시작은 밀러 준위의 대량살상무기 수색팀이 제보를 받고 건물에 진입하는 장면이다. 건물 앞에는 민간인들이 오가고 있고, 부하는 확인된 것이 아니니 진입작전이 무모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밀러의 팀은 작전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총격전 끝에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선다. 지척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에 암순응 되면서 창고 안의 윤곽이 점차 뿌옇게 드러나는데, 밀러의 수색팀이 산소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들어선 창고는 대량살상무기고가 아니라 배설물 집하장(集荷場)이다. 이 장면은 영화 그린존이 이라크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각, 즉 전쟁이 명분과 확인 없이 분뇨통으로 직진하고 있다는 시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첫 장면이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 있나? 살상무기는 실재하나? 애당초 그것이 없었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거짓말의 진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이 공표되었을 때 부시 대통령이 내세운 개전 이유를 믿었던 미국인들은 인지적 부조화에 빠졌다. 특히 부시대통령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부조화가 더 심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절반 이상은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된 것 같다고 답했다. 즉 일부 미국인들은 전쟁이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해서 부조화를 피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정보를 무시하는 정보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위의 여론조사의 결과는 사회심리학자 애런슨과 태브리즈(Aronson & Tavris)가 쓴 <거짓말의 진화>라는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이 책은 행위와 결정을 정당화하는 심리적인 이유가 인지 부조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지 부조화란 심리적으로 상반되는 두 가지 인지요소(태도, 신념,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 발생하는 긴장상태다.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상충되는 것들 사이에서도 일관성을 찾고자 한다. 에런슨과 태브리즈는 최근 수년동안 근거가 부족한 신념에 완강하게 집착한 대표적 예로 조지 W. 부시의 이라크전을 꼽는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사실을 무시하면서까지 엄청난 대가를 치루는 왜곡된 신념에 집착하는가? 사고 능력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비합리적일 수 있는가? 영화는 바로 이 질문을 충실히 따라간다. 이 영화가 추적해 가는 질문은 결코 이라크전 발생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이유가 아니다.

파운드스톤 부장. 영화는 상반된 신념을 가진 두 사람, 즉 파운드스톤과 밀러의 대결 구도를 이룬다. 미국 국방행정관 부장인 파운드스톤은 이라크에 대한 부시의 노선을 지지한다. 그는 이라크가 위험한 국가이며 중동 평화를 위해서 후세인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으며 이라크 질서 회복을 위해서 친서방 진영의 지도자가 이라크에서 서구식 정치 제도를 실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념에서 파운드스톤의 거짓말이 시작된다. 파운드스톤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정보를 무시한다.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이유는 이 정보가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그의 허위보고로 전쟁이 시작되고 일단 엄청난 물량과 희생이 따르는 전쟁이 진행되자 파운드스톤은 더욱 물러설 수 없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대량살상무기 위치에 대한 거짓정보를 만든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거짓 자기정당화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며, 당장은 아니지만 찾다 보면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의 경고음이 왜곡된 허위 신념아래서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확증편향 외에 개인의 권력욕을 행동의 동력으로 같이 배치한다. 확증편향이란 일관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확실한 증거에 직면해서도 기존의 신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증거를 비판, 왜곡, 기각하는 것이다. 확증편향에 의한 자기정당화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터무니 없다고 여겨지는가? 그러나 이라크전쟁 시작 이후에 조지 부시가 출마했던 2004년도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에 행해진 연구 결과를 보면 지나친 이야기도 아니다. 연구에서 핵자기공명장치(MRI)로 뇌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 피험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접했을 때는 뇌의 추론 영역이 거의 정지되었다. 반면 자신이 처리해야 할 정보간에 조화가 회복되었을 때는 뇌의 정서회로가 환하게 밝아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합리적인 것이 인간 판단의 속성인가?

밀러 준위. 판단의 비합리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파운드스톤은 그렇다고 답하는데 비해서 밀러 준위는 아니라고 답한다. 밀러는 대랑살상무기를 찾기 위해 이라크에 투입된 수색부대 소속이다. 처음에는 대량살상무기와 전쟁의 정당성을 믿었지만 몇 차례의 작전수행에도 불구하고 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하자 질문을 시작한다. 과연 정확한 정보인가? 부정확한 정보라면 누가 왜 사실에 대해서 은폐, 왜곡, 조작을 하는 것인가? 이미 전쟁이 시작된 상태에서 이러한 질문은 자신의 국가가 정의롭고 선하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또한 전쟁의 정당성을 찾으라는 정부의 촉구, 그리고 이라크 참전 군인들의 무사 귀환을 빌며 가가호호 혹은 마을마다 노란 리본을 매달았던 조국 국민들의 기대와 신념에 상치(相馳)되는 방향이다. 그러나 그는 군인의 본분은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는 상관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멈추지 못한다.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을 지키기 어려운 전쟁터에서 이러한 질문을 추적하는 것은 위험하고 목숨을 건 일이지만 밀러는 양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보이는 바를 직시한다.

부조화를 줄이고자 하는 욕구가 보편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그 욕구에 끌려 다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애런슨과 태브리즈는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듯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지켜본다면 자기정당화의 악순환에서 탈출할 수 있고 했다. 밀러 준위는 자기 정당화의 요구에 끌려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새로운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이러한 행동은 다름 아닌 용기다.

영화 <그린존>은 전쟁의 시작에서부터 부시가 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선포하기까지 6주간을 다루고 있다.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전쟁 발발에 대한 가설 중 하나이며 이라크전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키지는 않는다. 2004.10. 미국이 파견한 조사단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므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그래서 영화는 폭로나 고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부조리한 거짓이 끝없이 정당화 될 수는 없으며 누군가는 사력을 다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는 보편적인 기대를 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영화는 미국의 부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의 원천으로 미국의 권리장전을 펼쳐보인다. 미국의 권리장전, 수정헌법 제 1조 표현과 언론의 자유. 감독은 개인의 양심과 이를 표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한 체제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자정(自淨) 능력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영화 끝에서 밀러 준위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오류 정정 기사를 작성해서 메일을 여러 언론기관으로 발송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일반적이다.

사람은 늘 옳을 수 없다. 반드시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것은 독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자기정당화는 우리 안에 익숙하게 내장되어 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는 실수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 만약 당신이 밀러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대답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액션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오락영화의 틀을 따르고 있으며, 일반인은 일단 밀러처럼 초인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고 기밀 정보의 원천에 접근할 길도 없다. 그러나 어떤 렌즈를 통해서 보아도, 비록 그것이 오락영화의 렌즈라 하더라도 전쟁은 참혹하다. 전쟁에 수반되는 폭력과 파괴, 공포와 죽음 앞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소 분별력의 경계가 어디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상황이 극단적일수록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자기 정당화의 바퀴는 더 거세게 굴러갈 것이다. 세상이 혼란 속에서 참혹할 때 당신은 그것이 신기루라 하더라도 진실을 외면한 안전지대 그린존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밀러도 파운드스톤도 아닌 우리는 누구도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영<심리학박사, 청룡시네마(www.blueaward.co.kr) 스페셜리뷰 필자>

(본 글에서 기술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연구는 애런슨과 태브리즈의 <거짓말의 진화>에서 인용한 것들이다. 이 책의 저자 중 한명인 애런슨은 인지부조화이론을 만든 페스팅어와 함께 스텐퍼드 대학에서 인지부조화에 대해 많은 연구를 수행한 심리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