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반가운 살인자'
입력 : 2010.04.12 15:50
| 허약한 갈등…가난하고 허술한 이야기 |
'반가운 살인자'(감독 김동욱)는 산만하고 혼란스럽다. 핵심 인물이 모호하고, 기둥 줄거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결말에 이르면 반전이 나타난다. 눈물겨운 부성애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딸의 장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려는 아버지 영석(유오성)의 행동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촘촘하지 못하다. 인물의 갈등은 아예 없거나 어긋나고, 이야기 전개는 덜컹거린다.
'반가운 살인자'는 중심 이야기가 빈약할 때 영화가 어떤 위험에 빠지는지를 보여준다. 인물의 내면이나 인과관계의 섬세함이 필수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여기에 코미디적인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해 혼란을 부추긴다. 장르적으로 서로 녹아들지 못한 채 겉돈다.
영화에서 이야기는 필수 요소다. 가장 중요하다.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이야기를 가장 중시한다는 이런저런 설문조사를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끊임없이 인용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야기의 폭과 깊이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 현재 흥행 1위인 '타이탄' 등이 신화에서 소재를 빌려왔다. 기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바타'의 성공은 기술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상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영화 안에서의 서사의 완결성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모든 영화가 이야기로, 메시지로 승부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기본 전제가 있다.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배제하는 실험영화가 아니라면, 영화는 최소한의 서사를 갖춰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반가운 살인자'의 이야기는 가난하고 허술하다. 밑바닥 드러낸 흥부네 쌀독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신화의 풍성함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크게는 주제, 작게는 택시기사(성지루)가 왜 영석을 죽이려고 하는지 등에 대한 기본 정보는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가운 살인자'에는 아무것도 없다.
제목은 흥미롭다. 반어적이다. 연쇄 살인범이 반갑다니. 그래서 무슨 내용일까, 호기심을 자아낸다.
정민(김동욱)은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동네의 신참 형사다. 하지만 뭐 하나 되는 게 없다. 헉헉거리며 가파른 계단을 올라 현장에 갔다가 허탕치고, 금연 정류장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돼 망신당하고, 수사팀장에게 찍혀 매일 수모를 당한다. 게다가 아파트 부녀회장인 어머니는 경찰서 앞마당에서 집값 떨어지니 범인 빨리 잡으라고 데모한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은 영석이다. 2년전 사업 실패 후 집을 나가 실종신고가 된 영석이 어느 날 몰래 돌아온다. 그는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 비 오는 날이면 여장을 한 채 골목을 배회한다. 살인자 혹은 변태로 의심받는다.
관객들은 대개 정민과 영석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영화는 기대를 배반한다. 정민과 영석은 끝까지 그냥 스쳐지나가는 관계만 맺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인물들도 똑같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인물간의 갈등이 거의 없다. 영석과 딸 하린(심은경)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영석이 딸에게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을 정도다. 하린이 아빠를 미행하고, 살인 용의자로 신고하는 장면은 희화적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영석이 6억원짜리 보험금 수취인을 딸로 바꿔놓으면서 단번에, 눈 녹듯 사라진다. 영석을 살해하려는 택시 기사의 등장도 느닷없다. 앞뒤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살해 장면의 어색함도 가릴 수 없다.
이야기와 갈등이 허약하니, 엉뚱한 인물과 사건들이 그 틈을 제멋대로 비집고 들어온다. 신문 지국장과 불량학생 쭈꾸미 일당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는 특히 거슬린다. 영화의 테마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들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오히려 흐름을 심각하게 방해할 뿐이다.
'반가운 살인자'는 욕심이 너무 많다. 감독은 범죄, 스릴러, 코미디를 한 솥에 넣고 요리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구슬을 거의 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장르가 모호해지고, 이야기는 심하게 헝클어진다.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천릿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신발끈부터 매야 한다.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정리가 먼저 필요하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참고해야 할 텍스트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
'반가운 살인자'는 중심 이야기가 빈약할 때 영화가 어떤 위험에 빠지는지를 보여준다. 인물의 내면이나 인과관계의 섬세함이 필수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여기에 코미디적인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해 혼란을 부추긴다. 장르적으로 서로 녹아들지 못한 채 겉돈다.
영화에서 이야기는 필수 요소다. 가장 중요하다.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이야기를 가장 중시한다는 이런저런 설문조사를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끊임없이 인용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야기의 폭과 깊이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 현재 흥행 1위인 '타이탄' 등이 신화에서 소재를 빌려왔다. 기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바타'의 성공은 기술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상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영화 안에서의 서사의 완결성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모든 영화가 이야기로, 메시지로 승부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기본 전제가 있다.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배제하는 실험영화가 아니라면, 영화는 최소한의 서사를 갖춰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반가운 살인자'의 이야기는 가난하고 허술하다. 밑바닥 드러낸 흥부네 쌀독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신화의 풍성함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크게는 주제, 작게는 택시기사(성지루)가 왜 영석을 죽이려고 하는지 등에 대한 기본 정보는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가운 살인자'에는 아무것도 없다.
제목은 흥미롭다. 반어적이다. 연쇄 살인범이 반갑다니. 그래서 무슨 내용일까, 호기심을 자아낸다.
정민(김동욱)은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동네의 신참 형사다. 하지만 뭐 하나 되는 게 없다. 헉헉거리며 가파른 계단을 올라 현장에 갔다가 허탕치고, 금연 정류장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돼 망신당하고, 수사팀장에게 찍혀 매일 수모를 당한다. 게다가 아파트 부녀회장인 어머니는 경찰서 앞마당에서 집값 떨어지니 범인 빨리 잡으라고 데모한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은 영석이다. 2년전 사업 실패 후 집을 나가 실종신고가 된 영석이 어느 날 몰래 돌아온다. 그는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 비 오는 날이면 여장을 한 채 골목을 배회한다. 살인자 혹은 변태로 의심받는다.
관객들은 대개 정민과 영석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영화는 기대를 배반한다. 정민과 영석은 끝까지 그냥 스쳐지나가는 관계만 맺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인물들도 똑같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인물간의 갈등이 거의 없다. 영석과 딸 하린(심은경)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영석이 딸에게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을 정도다. 하린이 아빠를 미행하고, 살인 용의자로 신고하는 장면은 희화적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영석이 6억원짜리 보험금 수취인을 딸로 바꿔놓으면서 단번에, 눈 녹듯 사라진다. 영석을 살해하려는 택시 기사의 등장도 느닷없다. 앞뒤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살해 장면의 어색함도 가릴 수 없다.
이야기와 갈등이 허약하니, 엉뚱한 인물과 사건들이 그 틈을 제멋대로 비집고 들어온다. 신문 지국장과 불량학생 쭈꾸미 일당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는 특히 거슬린다. 영화의 테마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들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오히려 흐름을 심각하게 방해할 뿐이다.
'반가운 살인자'는 욕심이 너무 많다. 감독은 범죄, 스릴러, 코미디를 한 솥에 넣고 요리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구슬을 거의 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장르가 모호해지고, 이야기는 심하게 헝클어진다.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천릿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신발끈부터 매야 한다.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정리가 먼저 필요하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참고해야 할 텍스트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