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그릴 뿐… 50년 접었던 꿈 이뤄 행복"

원로 국문학자 조동일(71)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그린 그림 100여점 중 20점을 골라 다음 달 19~25일 서울 인사동 조형갤러리에서 부인 허정(69)씨와 부부전(展)을 연다.

국문학 연구와 문학비평에서 독보적 업적을 남긴 학자이지만 그의 원래 꿈은 화가였다. 경북고 2학년 때인 1956년 친구 둘과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학자의 길을 걸었다.

"2년 전 다시 붓을 잡았어요. 교수 때도 간혹 그렸는데 한번 시작하면 너무 빠져드니까 연구에 지장이 있어 일부러 멀리했습니다. 50년 넘게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펼치니 행복합니다."

조동일 교수의 경기도 산본 집은 그림 도구로 가득하다. 문간방을 화실로 꾸며 부인과 매일 6시간 정도 그림을 그린다. 부인 허씨는 동양화가 김동수 화백의 지도를 받아 9년 전 첫 개인전을 가졌고, 이번 전시회에 역시 20점을 출품했다. 45년을 산 부부이자 고향(경북 영양) 친구인 이들의 그림은 모두 풍경화(산수화)다. 하지만 스타일은 다르다. 허씨는 서양화 재료로 동양 산수화를 그리고, 조 교수는 동양화 재료로 서양식 풍경화를 그린다. 그래서 전시회 이름을 '風景(풍경)+山水(산수)'라고 했다. 전시회 도록의 해설은 큐레이터인 딸 선령씨가 썼다.

"제 그림은 역동적인 반면, 아내 그림은 차분합니다. 아내는 제 붓칠이 거칠다고 타박하죠. 그래도 그림은 자기식으로 되는 거잖아요."

조동일 교수는 1968년 계명대 교수를 시작으로 영남대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거쳐 2004년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했고, 지난해 8월 계명대 석좌교수를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지난해 5000여권의 장서를 계명대에 기증하면서도 도록과 화집은 남겨두었다. 겸재 정선과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 시슬레(Sisley)의 그림을 틈틈이 보면서 두 대가(大家)의 그림을 합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화두로 삼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