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연승 이세돌, 막을 자 누구냐?

개인 신기록까지 앞으로 12승. 이세돌(27) 九단이 브레이크 고장 난 기관차처럼 끝없는 연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 도쿄서 열린 제23회 후지쓰배 첫 라운드서 가볍게 2승을 추가, 준결 티켓을 따고 귀국하더니 17일 안형준(물가정보배), 19일엔 김형우(바둑왕전)를 제물로 다시 2승을 보탰다.

이로써 작년 하반기 휴직을 거쳐 올 1월 바둑계에 복귀한 이후 이세돌의 연승 숫자는 21로 늘어났다. 12승만 추가하면 개인 최다 연승 기록인 32연승(2000년)을 넘어서게 된다. 이세돌은 지난 2007년엔 24연승을 기록하는 등 '몰아치기'에 유독 강하다. 21승만으로도 이미 작년 최다 연승 기록(17승·김지석)을 넘어섰다.

21승의 내역은 세계대회 본선 9승, 국내 본선에서 2승이고 나머지 10승은 국내 예선서 기록한 것이다. 예선 성적이 절반에 가깝다는 점에서 연승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각도 있지만, 만만한 상대가 한 명도 없는 요즘 무결점 퍼레이드는 이세돌만이 해낼 수 있다는 의견이 더 많다.

21연승 가운데 몇 판의 '작품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이세돌 스스로도 "3~4판은 도저히 못 이길 바둑이었는데 운이 많이 따라줬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세돌이 아닌 누구라도 20승쯤 올리려면 그 정도 비율의 역전승은 기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일 만한 상대는 요즘 거의 없다. 게다가 이세돌은 단단하게 판을 짜는 이창호나 박영훈과 달리 원래 위태위태하게 이겨 가는 유형이다.

바둑계는 이세돌이 6개월간의 공백을 딛고 이토록 빨리 자기 페이스를 되찾은 데 대해 경악하고 있다. "2~3년 바둑계를 떠났다가 복귀 후 다시 바둑계를 휩쓸었던 우칭위안(吳淸源)을 연상시킨다"(최규병 九단)는 말도 나온다. 3월 이후 세계대회 정상권 스타들과의 대결이 잦아졌지만 그 특유의 KO펀치는 번번이 통하고 있다. 이세돌 자신도 "처음엔 적응이 잘 안됐으나 이젠 승부감각이 되돌아왔다"고 말한다.

그런 이세돌 앞에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24일 시작될 중국 창하오(常昊)와의 제2회 비씨카드배 결승5번기가 그것. 만약 이 대결을 3대0으로 장식할 수 있다면 그는 연승부문 개인 역대 2위 기록과 타이를 이루면서 1위(32연승) 경신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물론 1패라도 기록한다면 연승은 중단된다.

이번 이세돌·창하오 간 결승에 앞서 이세돌의 승리를 의심하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통산 전적 7대6, 비공식전 포함 13대7의 전적도 전적이려니와 기세에서 상대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세돌 본인도 "단판이라면 몰라도 5번기는 자신 있다"면서 "잇단 대역전승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남은 판들은 보너스란 생각으로 편하게 두겠다"는 자세다.

요즘 바둑계의 화두는 단연 이세돌로 모아지는 느낌. 절정에서의 휴직, 복귀 후의 연승 행진 등 풍운아적 행보에다 대국 내용 또한 박력 만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바둑TV서 생중계한 구리와의 후지쓰배 준준결승전은 30대 이상 남성 시청자 층에서 동시간대 케이블 채널 시청률 1위(최고시청률 0.788%, 최고점유율 12.5%·TNmS)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세돌 앞에는 비씨카드 결승에 이어 명인전 본선, KT배 본선, LG배 본선과 후지쓰배 준결승 및 결승(7월 3~5일) 등 주요 대국이 대기 중이다. 이 무렵까지 연승이 이어진다면 한국바둑 역대 최다 연승 기록(41연승·90년 이창호) 언저리까지 육박할지도 모른다. "내용이 중요할 뿐 연승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세돌이지만 현재의 자신감과 파괴력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바둑계는 바야흐로 '돌아온 쎈돌'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