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따라가는 여행은 곧 '나'를 찾는 길"

지난 10일 오후 6시 반 제주도 서귀포시 상효동 우리들리조트 언덕에 설치된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문화계 인사 50여명은 휴대폰과 카메라를 입구에 맡기고 절대 침묵을 약속한 뒤 63.6㎡ 면적의 설치작품 안으로 들어갔다.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스카이스페이스〉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숨소리도 낮췄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8m 높이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보이는 하늘의 색이 미세하게 바뀌기 시작했고, 일몰(日沒)을 지나면서 변화는 조금씩 빨라졌다. 빛은 파란색에서 파파야색으로, 이어 주황과 보라 등 다채롭게 변했다. 빛에 몰입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어느덧 우주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맞았다.

〈스카이스페이스〉 오픈을 위해 한국을 찾은 제임스 터렐은 관람객들과 함께 1시간 20여분간 자신의 작품을 지켜본 뒤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194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터렐은 40여년간 빛과 공간을 이용해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보여왔다. 퀘이커 교도인 그는 어릴 때 종교 모임이 길어지면 '천장이 뚫려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으며, 10대 때 비행기 조종을 배우면서 하늘과 자연이 빚어내는 장엄함에 매료돼 왔다. 그는 뉴욕 모마(MoMA)를 비롯해 구겐하임미술관·휘트니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해왔고,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사(死)화산을 작품으로 만드는 로덴 분화구 프로젝트를 30년째 진행하고 있다. 우리들리조트의 김수경 회장은 뉴욕에서 터렐의 전시를 접한 뒤, 국내에도 그의 작품을 알리고 싶어 〈스카이스페이스〉를 의뢰했다.

터렐은 '빛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나의 영(靈)과 육(肉)을 키워주는 영양소이자, 물질과 비물질을 연결해주는 다리"라고 답했다. 그는 "사람들은 빛이 조명을 위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빛은 그 자체가 순수한 감정이고 감동"이라고 말했다. 터렐은 "멀리 우주에 있는 별을 분석해보면 빛을 통해 그 별에 어떤 물질이 타고 있고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려준다"며 "빛 자체에 진실이 있다"고 말했다.

터렐은 "물리적인 빛을 통해 마음의 빛, 영감의 빛을 보려면 감각으로 둘러싸인 현실에서 떨어져 나올 필요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 오늘처럼 사람들을 고립된 공간에 앉아 있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작품을 통해 빛을 주는 게 아니라 관람객에게 단지 빛이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터렐은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과 차이점을 통해 각각 다른 빛을 보게 된다"며 "그런 점에서 내 작품은 전적으로 관람객에게 의지한다"고 밝혔다.

터렐은 현재 진행 중인 로덴 분화구 프로젝트 외에도 북극 지방의 백야광(白夜光)을 이용한 작품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로덴 분화구 프로젝트에 대해, "사람들에게 분화구 속을 걸으며 달과 태양·별의 위치를 보게 해주고 자연의 빛을 보여준다"면서 "그 안에는 수많은 소우주가 있다"고 말했다.

터렐은 자신의 예술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속한 세계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잘 보는 것입니다. 원래 있는 하늘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스카이스페이스에 앉는 것처럼 나를 잘 알기 위해선 환경을 바꿔가며 들여다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