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소재 영화, '마더' 본 뒤 자신 없어져"

―스승 격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을 제친 소감이 남다르겠습니다(그는 고레에다 감독의 와세다대 문학부 후배이자 그의 연출부로 영화일을 시작했다).

"그건 정말 미묘한 감정이죠. 철저히 수용자 감성에 호소하는 영화를 두고 1·2등을 매기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고레에다 감독님과 비슷한 시기에 영화가 나오고 한국서 차례로 개봉해서, 감독님과 함께 걷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의료 관련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가짜 직업을 가진 남자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병을 얻어 수술을 하게 됐는데, 병에 대한 의사와 환자의 무게감이 크게 다른 것을 실감했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 하는 수술이지만, 의사는 마치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치료를 하는 마음이랄까요. 그런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일본에는 여성감독이 드물지요.

"영화 현장에서 여성들이 일하기 시작한 게 10년 전쯤부터인 것 같습니다. 제가 영화를 시작하던 13년 전만 해도 연출부에는 여자가 한 명도 없었어요. 저도 '여자는 감독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고요. 아마 몇십 명의 남자 스태프를 큰 소리로 지휘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일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자신감이 있다면 감독으로서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의 각본으로는 더 연출을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본 감상이 특별했다면서요.

"누명 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봉 감독의 영화가 누명과 관련된 영화라고 해서 불길한 생각이 들었었죠.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너무 훌륭해서, '마더'의 잔영이 사라지기 전까지 누명 영화는 못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말한다면.

"관객들이 말하길 등장인물 중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영화가 달라진답니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2~3번씩 보시기 바랍니다.(웃음)"

[시네 업데이트] 꿈 꾸는 세상이 다 다르구나 - 8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