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페스티벌 봄 초청작 '난 내가 아니고 그 말은 내 말이 아니다'

켄트리지는 일찌감치 등장해 객석을 구경하고 있었다. 흰 스크린과 작은 사다리뿐인 무대는 강의실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켄트리지가 들고 나온 책에서 하나둘 책장이 빠져나와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이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해 보였다.

'난 내가 아니고, 그 말(馬)은 내 말이 아니다'라는 긴 제목이 붙은 공연은 50분 만에 끝났다. 켄트리지 혼자 등장해 말하는 형식으로, 그는 러시아 작가 고골의 '코' 이야기로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코를 잃어버린 코발료프가 우여곡절 끝에 코를 찾아 대화를 나누는 설정이 희극적이다. 그림과 영상 사이에서 작업해온 화가 켄트리지는 자아의 분열을 말하고 있었다.

페스티벌 봄(www.festivalbom.org) 초청작인 '난 내가 아니고…'는 1인극인지 강의인지 모호한 형태였다. 켄트리지가 서울의 호텔방 경험담을 고백하는 순간 스크린에는 '또 다른 켄트리지'가 재생됐다. 고골의 '코'와 거기서 나온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그리고 '돈키호테'에 나오는 말(馬) 로시난테에 이르기까지 이 공연은 완전하거나 분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역사 속 단어들이 어떤 선(線)이 되어 우리를 사유하게 하고 미로 밖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상상을 구체화하는 힘이 좋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1층에서는 5월 2일까지 같은 제목의 전시가 이어진다. (02)741-3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