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구르믈...' 서슬퍼런 칼속에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있는 영화

MBC '선덕여왕'과 '동이' 그리고 KBS 2TV '추노' 등 사극은 안방 극장에서 큰 사랑을 받는 효자 장르지만 스크린에선 다소 사정이 다르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2005년 12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눈에 띄게 큰 흥행을 거둔 영화는 보기 드물다.

16부작과 24부작이 보통인 드라마 계에서도 사극이란 장르는 30~40부작을 훌쩍 뛰어넘는 장편이 많다. 그만큼 극의 중심 서술이 되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연 설명과 극적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2시간 내외인 스크린에 사극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사극은 스크린에서 다뤄지기 힘든 장르일뿐만 아니라 흥행을 거두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왕의 남자' 감독으로서의 숙명이었을까? 이준익 감독은 또 다시 사극에 도전장을 던졌다. 더군다나 할리우드 3D와 블록버스터에 밀려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국내 영화계에서 그의 이번 사극 카드는 눈길을 끌다 못해 흥미롭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하 구르믈)'은 선조 25년 임진왜란 전후의 배경으로 "칼잽이는 칼 뒤에 숨어야 한다"는 전설의 맹인검객 황정학(황정민), 그리고 "칼잡이가 칼 뒤에 숨는 세상이 싫다"는 이몽학(차승원) 사이의 치열한 대결을 담았다. 피폐해져만 가는 민초들의 삶에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심가 이몽학은 자신의 꿈을 위해 연인 백지(한지혜)마저 버린 채, 반란군 무리를 이끌고 궁으로 향한다. 이에 황정학은 그를 말리기 위해 가족 모두가 살해된 권력가의 서자 견자(백성현)와 함께 추격한다.

이준익 감독은 1000만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116분의 런닝타임동안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며 팽팽한 긴장감, 마당극의 풍자와 해학 등을 스토리와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더했다. 또한 다소 늘어질 수도 있는 부분에서는 국내 최고의 연기파 중 하나인 황정민의 혼이 담긴 맹인 연기가 빛을 발했다.

'구르믈'은 참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다. 먼저 이준익 감독의 5년 만의 사극 복귀작으로 원작 만화가 있는 '구르믈'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갔는지 관심이 쏠린다

차승원과 황정민의 연기 대결 또한 쉽사리 지나칠 수 없다. 차승원이라는 강한 캐릭터 손에 들려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칼과 사람 좋은 웃음 뒤에 가려진 날카로운 눈빛의 황정민 간의 대결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마지막으로 '왕의 남자' 이준기에 이어 백성현이라는 또 다른 스타가 탄생할 지 여부다. 이번 영화에서는 견자의 성장과 이몽학과 황정학의 날선 대립을 균형있게 다뤘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보여진 견자의 성장 모습에서 백성현의 원톱 영화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는 비중 높은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풍성한 볼거리에도 '구르믈'이 '왕의 남자'에 이어 큰 흥행에 성공할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2'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고, 5년 전보다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숙제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행 성적을 떠나 '구르믈'은 이준익 감독의 장인 정신,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높게 평가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