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신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 영화에 대해 실망을 표하는 비평에 관객은 별로 개의치 말 일이다. 비평에서 기준이란 도박판의 본전 같은 것이다. 도박에서 가장 많이 땄을 때를 본전으로 치듯, '왕의 남자'를 만든 감독에겐 '왕의 남자'가 비평 기준이다. 아무도 "누가 예전에 그렇게 잘 만들라고 했나"라고 하진 않지만.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8일 개봉)'은 뛰어난 영화다. 다만 굵게 휘몰아치던 이야기의 동아줄이 종반 들어 표류하다 끊기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모든 관현악이 마지막 악장에서 휘몰아치다가 팀파니와 심벌즈로 마무리되지 않듯, 이 영화는 다른 어법으로 종결됐을 뿐이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의 조정(朝廷)은 우유부단한 선조와 당파싸움에 골몰하는 동인(東人)·서인(西人)들의 다툼으로 어지러웠다. 이때 정여립을 비롯해 황정학(황정민)과 이몽학(차승원) 등은 '대동계'를 만들어 왜구와 싸우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죄로 해체하려 든다. 이에 이몽학은 우선 조정부터 갈아엎고 왜를 쫓아내자며 혁명을 주도하고, 맹인 검객인 황정학은 그를 말리기 위해 찾아 나선다. 정학은 몽학에게 아버지를 잃은 견자(백성현)를 데리고 몽학이 사랑했던 기생 백지(한지혜)부터 찾아간다.

이 영화의 으뜸으로 볼 만한 것은 모든 출연진의 연기력이다. 거친 톤으로 표현된 황정민의 맹인 연기는 물론, 주·조연들의 연기가 흠 잡을 데 없을 만큼 고루 좋다. 심지어 장터에서 어슬렁거리는 엑스트라의 시선 처리까지 완벽하니, 이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연출이 그만큼 치밀하다는 것이겠다.

또 이 영화는 강약 완급의 조절이 뛰어나다. 사실 박흥용 원작 만화가 그렇듯 스토리는 단순한 편이다. 한순간에 역사를 바꿔 보겠다며 날뛰는 한 사람을, 그보다 차분한 사람이 뜯어말리러 쫓아가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는, 액션과 웃음, 차분한 풍경이 적절히 배합돼 지루할 틈 없다.

이준익 감독의 특장인 유머도 곳곳에 세련되게 박혀 있다. 이를테면 황정민이 다리 위에서 요강 지고 가던 백성현을 혼내는데, 어떤 요강은 바로 냇물에 떨어지고 어떤 요강은 길게 구르다 딱 좋은 타이밍에 물에 빠진다. 우연히 이렇게 됐는지 여러 번 찍다 보니 그런지 모르겠으나, 이 장면을 선택한 것만큼은 탁월하다. 선조가 왜구 침략을 막을 장수로 육지는 신립, 바다는 이순신을 지명하는 장면도 코미디 요소 없이 코미디 이상의 웃음을 끌어낸다.

다만 극 전개상 관객은 맹인 검객의 시선을 따라가게 마련인데, 종반 어느 순간 갑자기 시선이 분산돼 이몽학·견자·백지에게 나누어지니 영화가 아연 힘을 잃는다. 혁명을 꿈꾼 자와 원한을 갚으려는 자, 사랑을 맹종하는 자의 그 모든 절실함이 모두 무력해지는 마지막은, 대단한 명장면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런 기억을 남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감독만이 알 것이다.

[시네 업데이트] 꿈 꾸는 세상이 다 다르구나 - 8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