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시네마 오디세이 : 베스트셀러

흥미로운 소재-선 굵은 연출은 괜찮은데…

　'베스트셀러'(감독 이정호)는 소설의 표절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왜 표절하게 됐는지, 그 심리적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씩 베일을 벗겨나간다. 표절은 매우 민감한 주제다. 폭발력도 강하다. 일단 표절 딱지가 붙으면, 누구든 살아남기 힘들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데다 수시로 불거져 나온다. 그런 점에서 '베스트셀러'의 설정은 흥미롭다. 표절을 내면의 상처로 풀어가는 접근 방법도 눈길을 끈다.

'베스트셀러'의 두 바퀴는 표절과 살인 사건이다. 표절 사건이 번져 20여년 전 살인사건의 비밀이 밝혀진다. 표절과 살인사건은 거리가 멀다. 이질적인 두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고,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하느냐가 관건이다.

백희수(엄정화)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하지만 새 소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공모전 응모작을 표절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모든 것을 잃는다. 2년 후 출판사 편집장의 소개로 호숫가 별장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재기를 꿈꾸며 새 작품을 집필한다. 딸 연희가 '누군가'와 대화한 내용이 바탕이 된다. 그런데 새 소설 역시 표절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무도 없는 외딴 별장에서, 딸이 신원미상 원혼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집필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영화 장르는 전체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다. 전, 후반으로 크게 양분되는 게 색다르다. 백희수가 표절 논란에 휩싸이고, 별장에서 소설 쓰는 과정이 하나다. 여기까지는 호러영화로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백희수의 정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곧이어 백희수의 트라우마가 드러난다. 이 진단은 또다른 시작이다. 백희수가 직접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다시 별장으로 내려오면서, 미궁에 빠졌던 살인 사건의 비밀이 드러난다. 후반부는 범죄, 스릴러 영화로 진행된다. 장르의 크로스오버는 최근 한국영화의 트렌드다. 하지만 잘 소화하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내다보면 영화를 그르치기 쉽다. 이 점에서 '베스트셀러'는 실패작은 아니지만, 성공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감독은 비교적 선 굵은 연출력을 보여준다. 최근 유행인 스릴러, 미스터리물 중에서 나름대로 짜임새를 갖춘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만만치 않은 뚝심도 보여준다. 특히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후반부는, 그 자체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미친 여자'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유인하는 솜씨도 신인답지 않게 세련됐다.

문제는 스토리의 균형과 조화다. 영화는 표절로 시작해 표절로 끝맺는다. 희수는 마지막에 자신의 첫 작품 표절 사실을 인정한다(이 대목은 지난해 논란이 됐던 한 여성 중견작가의 표절 문제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그런데 별장에서의 액션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비중도 커지면서 영화의 흐름이 방향을 잃는다. 희수의 표절과 영혼의 상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범인을 찾는 데 초점이 모아진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표절의 심리적 원인과 살인 사건의 관련성도 짚어야 할 문제다. 진범이 밝혀지는 것과 백희수가 딸과 관련된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사실 별개다. 굳이 연결지으려면, 좀 더 확실한 고리가 필요하다. 두 사건이 무리하게 연결돼 수레바퀴가 덜컹거린다. 트라우마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면 백희수를 중심으로 한 연희, 수진의 유사성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백희수와 살인사건 진범의 관계는 반대로 너무 헐거워 아쉬움을 남긴다. 두 사람을 맺어줬다면 반전의 묘미가 배가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갑자기 해피엔드로 마무리되는 어색함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배우들의 대화의 톤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과도한 액션과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는 쇳소리로 시작된다. 배우들은 줄곧 고함치거나 싸우듯 대화한다. 출판사 편집장마저 끊임없이 소리친다. 사건의 흐름과 인물의 갈등 만으로 섬뜩한 긴장을 자아내는 국내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엄정화는 악전고투하면서 홀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연기의 힘을 보여줬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