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틈 없지만 짜릿한 순간도 없다

최고급 은식기에 담겨나온 스팸구이 같은 영화. 영화는 대량복제품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 2(29일 개봉)'는 지루할 틈이 거의 없지만 짜릿한 순간 또한 별로 없다. 갑자기 시간을 때워야 하거나 사소하지만 기분 나쁜 일을 빨리 잊고 싶을 때 이 영화는 꽤 충실한 역할을 할 것이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밝히고 대형 쇼케이스를 열며 연예인이 돼 간다. 회사 CEO는 비서(귀네스 팰트로)에게 내주고 F1 경주에 나가며 인생을 즐긴다. 아이언맨 중심회로 공동 개발자의 아들 이반 반코(미키 루크)는 아버지의 유품인 회로 설계도로 위력적인 전기채찍을 만들어 아이언맨을 위협한다. 스타크의 경쟁사 사장인 저스틴 해머(샘 록웰)는 반코를 데려다가 아이언맨을 능가할 무기를 만들게 한다.

이 영화는 수퍼히어로 무비 속편의 법칙을 2열 종대로 얌전하게 따라간다. 영웅의 적은 더 강해졌고 영웅은 적을 이기려고 더 강해진다. 그리고 영웅이 결국 이긴다(만세!).

이런 영화를 두고 말이 되니 안 되니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렇지만 과학 기술이 완전한 세계 평화를 가능케 하고 그 기술은 민간 기업이 독점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황당하다(밀튼 프리드먼이 살아 있었다면 개봉일 조조로 이 영화를 봤을 것이다).

그 시작이 황당했으니 요즘 인기있는 이말년 작가의 만화(버스에 실수로 불이 붙었는데 운전기사가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며 질주하는 식)처럼 아이언맨은 영화 초반 줄곧 '오바질'을 한다. "나는 정부를 대신해서 세계 평화를 이뤄냈다"고 아이언맨은 소리친다. 이렇게 오만방자한 수퍼히어로는 또 처음이다.

아이언맨은 속편에서 트랜스포머를 슬쩍 베낀다. 특고전압 회초리를 두들겨 맞은 주인공이 철가방 위에 올라서자 가방이 철컥철컥 아이언맨 철갑으로 바뀐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액션 신이 적다. 대개 이런 영화는 좋은 놈이 나쁜 놈과 3회전(1회전 판정승, 2회전 KO패, 3회전 KO승)쯤 치러주는 게 정석인데, 2회전밖에 안 싸운다. 미키 루크는 악역으로 잘 어울리지만 병들어 죽은 아버지 앞에 꿇어앉아 마스카라 색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민망하다.

[시네 업데이트] 꿈 꾸는 세상이 다 다르구나 - 8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