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死線을 뚫고

〈제8보〉(111~123)=아마추어 예선전 기보들을 보면 난투극보다는 영토다툼 형이 많다. 유감없이 싸우는 게 아마의 특권이라고들 하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어떤 의미에서 프로들보다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고 조심스럽게 '이기는 바둑'을 지향한다. 게다가 제한시간(1인당 30분)도 짧다. 하지만 일단 난타전이 펼쳐질 때는 프로들이 무색할 만큼 무시무시하다. 이 바둑도 이제부터 난전에 돌입한다.

좌하귀 흑이 잡힌다면 바둑도 끝이므로 흑111, 백112 모두 절대수. 114까지도 쌍방 필연이다. 여기서 흑 '가'가 성립하면 좋겠지만 참고도 6 이후 흑 3점이 도망갈 데가 없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패(覇)맛마저 사라진 것은 그 사이 112, 114가 놓인 탓이다. 이제 115 마늘모는 당연하면서도 유일한 탈출 통로.

122까지, 이 흑 대마는 도무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지옥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123으로 젖혀봤자 뭘 하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 대마의 목숨이다. 상대의 협조(?)가 조금만 곁들여지면 믿을 수 없는 스토리가 곧잘 펼쳐지는 장소가 바둑판 아니던가. 문제는 좌하 백도 아직 완생이 아니란 점이다. 123은 극적인 반전(反轉)드라마의 서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