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개봉작 다이어리'] '철제수트' 빼입은 철없는 영웅… '빨간 망토' 수퍼맨이 그립다

금요일 오후, 신사동으로 가는 140번 버스는 도심 정체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남산터널 한 복판에서 버스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 방송을 졸다 깨다 하며, 듣고 있었다.

"요즘 영화 '아이언맨2'가 엄청난 인기라죠? 돈 없는 사람은 영웅이 되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자, 그럼 재테크 전문가 ○○○씨를 모시고 돈 잘 버는 법에 대해서 들어보겠습니다."

민망하게도 풉, 웃음이 터졌다. '아이언맨'과 '재테크 전문가'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이어주는 교양국 아나운서풍의 저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아이로니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무기회사의 재벌 2세이고, 배트맨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은 두말하면 입 아픈 부자가 아닌가.

어둠 속에서 자기 존재를 감추던 정신분열 직전의 요즘 영웅들과 달리 '내가 아이언맨이야!'라고 일찌감치 자기 존재를 공식발표한 이 기념비적인 새 영웅의 '업그레이드' 버전은 '아이언맨2'에 없었다. 대신 과도하게 많은 '악당들'의 이름을 기억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독창성은 '미키루크', '샘 록웰' '스칼렛 요한슨'처럼 '프렌차이즈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을 것 같은 진지한 배우들을 싸잡아 팝콘기계에 넣고, 펑펑 튀겨낸 감독의 비범한 섭외능력에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 옛날, 동네 아이들이 엄마 보자기 하나를 두르고 말없이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추락사고'가 빈번하던 그 시절에는, 부자가 영웅이 되는 따위의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시장에 널려 있는 빨간색 망토 하나에 빤스 하나면 족하지 않은가. 이름도 어려운 유리섬유와 합금 등으로 만들어진 아이언맨의 '철제수트'는 아마도 값비싼 기계 장치에 열광하는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든 것인지도 모른다. 냉소적으로 보자면, '탕탕탕' 금속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아이언맨2'의 저 신통치 않은 액션은 '포스코 경영진'이 박수치며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꽉 막혔던 도로는 한남대교쯤에 다다르자 거짓말처럼 뚫렸다. 한층 넓어진 하늘을 바라보다가, 나는 빨간 망토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수퍼맨을 떠올렸다. 길은 뚫렸어도 속이 편치는 않았다. 이 정체 모를 소화불량 증세는 부모세대가 만들어준 철제 갑옷을 고급 수트처럼 휘두르며 오줌이나 싸대는 '철없는' 영웅을 보는 것에 대한 약간의 민망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5월까지 피어있는 진달래가 조화처럼 좀 생뚱맞아 보였다.


▶아이언맨 2

감독: 존 파브로/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미키 루크/ 개봉: 4월 29일/ 관객수: 342만명(9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