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러셀 크로의 매력… 그런데 '영웅'은 어디있지?

리들리 스콧과 러셀 크로가 다시 만난 역사 대작이라고 하니 많은 이들이 '글래디에이터'를 떠올리겠으나, 이 작품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영화의 모든 기술적 측면과 미술, 의상, 카메라 앵글은 뛰어나다. 러셀 크로의 남성적 매력도 여전하다. 그러나 13일 전 세계 동시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로빈 후드'는 관객을 빨아들이는 데 실패할 것 같다. 영웅담인데도 영웅의 고초와 복수를 드라마틱하게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2일(현지시각)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13세기 십자군 전쟁에 용병으로 참여한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는 영국 리처드왕을 따라 프랑스를 거쳐 본국 귀환길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왕이 전사하고, 그 대신 왕관을 갖고 귀환하던 기사 록슬리 역시 창을 맞고 죽는다. 록슬리는 로빈에게 자신의 검을 아버지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로빈은 록슬리의 고향집에 찾아가 록슬리 행세를 한다. 한편 왕위를 물려받은 존 왕은 백성과의 약속을 어기며 폭정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에 부제를 단다면 '그는 어떻게 로빈 후드가 되었나'쯤 되겠다. 영화 초반에도 "이 영화는 그가 어떻게 백성을 위해 무법자가 되었느냐에 대한 이야기"라는 자막이 나온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숲의 무법자, 윌리엄 텔과 화살촉 한 끝 차이로 용호상박하던 명궁, 동양에 태어났다면 홍길동이나 일지매가 됐을 그 착한 도적은 이 영화에 없다. 영화에서 로빈 후드는 평민 출신의 전사이며, 영화 내내 자신이 기사인 양 행세한 것 말고는 법을 어기지도 않는다. 그는 타이츠를 신지도 않고 뾰족한 모자를 쓰지도 않았다. 영화 맨 마지막에서야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개념 없는 왕에 대항해 숲에서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다. 자, 이제 로빈 후드 2편을 기다릴 차례인가.

유럽 민담의 주인공이 십자군 전쟁에 어떻게 얽혔고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를 어떻게 이끌어 냈으며, 왜 숲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꾸며낸 상상력은 그럴 듯하다. 프랑스군이 영국 남부 해안에 상륙하는 장면은 '중세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 할 만큼 스펙터클이 대단하다. '에이리언'과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를 연출한 73세 노장 감독의 손길은 군더더기를 거의 남기지 않고 화면을 깔끔하게 구성했다.

그러나 '새로운 로빈 후드를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너무 굳은 나머지, 이 영화의 이야기는 새롭기만 하지 왜 그가 영웅인지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게다가 로빈 후드가 활을 잘 쏜다는 것조차 부각시키지 않는다(딱 두 번 인상적인 명중 장면이 나올 뿐이다). 봉건 영주로부터 권리를 찾으려는 중세 평민들을 대변하는 로빈 후드는 민주주의 투사처럼 묘사됐다가, 마지막에 느닷없이 '모든 것을 함께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주의자로 변신하는 것도 어색하다. 무엇보다 민담과 동화, 만화영화 속 로빈 후드는 '꾀돌이' 이미지에 가까운데 이 영화에서 트로이 전사처럼 묘사된 것도 '새롭고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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