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互角의 절충

〈제6보〉(91~105)=이희성의 특질 중 빼놓아선 안 될 것은 지독한 장고(長考) 습관이다. 이 분야 대표주자로 알려진 조치훈보다 절대 못하지 않다. 그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제한시간을 남기고 바둑을 마치는 법이 없다. 하루 종일 '중노동'이 불가피해진 상대 기사들은 한숨부터 내쉬곤 한다. 오죽하면 '찐드기'란 별명까지 붙었을까. 그는 하염없는 장고를 통해 무엇이 프로 승부사의 구도자(求道者)적 자세인지 확연히 보여준다.

91의 당연한 차단에 92로 밀고 나간 순간 백에게 초 읽기가 선고됐다. 94 시점에서 흑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참고도 1, 3으로 포위해 이 백돌들을 모두 삼키는 수는 없을까. 그러나 바깥 백세가 철벽이어서 24까지 오히려 흑이 '빈 축'으로 잡힌다는 결론이다.

97까지 일단락. 흑이 △ 두 점 요석을 잡고 중앙을 강화했지만 백도 우중앙 세력권에 살을 붙이고 선수(先手)를 뽑아 호각(互角)의 절충이다. 이제는 '가'의 절단이 은근히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 상황에 놓인 98, 100이 기막힌 호수였다. 104까지 연결하려는 척하면서 좌하귀 백진을 통통하게 살찌운 것. 흑은 다시 집의 균형이 다급해지자 105로 백 한 점을 잡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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