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하녀'
입력 : 2010.05.17 16:18
| 은이는 희생양인가, 실패한 팜므파탈인가 |
'하녀'(감독 임상수)는 식당 종업원 은이(전도연)가 최상류층 대저택에 하녀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 대저택에는 가장 훈(이정재)과 쌍둥이를 임신한 안주인 해라(서우), 은이를 잘 따르는 여섯 살짜리 딸 나미,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나이든 하녀 병식(윤여정)이 있다. 영화는 은이가 대저택에 들어가고, 추방당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과정을 그린다.
뚱보 친구와 비좁은 원룸에서 살던 은이에게 훈의 대저택은 별천지다. 최고급 음식과 와인, 그림, 클래식으로 포장돼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추악한 본능이 꿈틀거린다. 훈에게 은이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일 뿐이다. 해라와 어머니의 권력을 향한 집념은 소름돋는다. 은이는 얼핏 상류사회의 성벽에 부딪쳐 산산조각난 희생양처럼 보인다.
'하녀'의 주제는 명확하다. 계급 문제를 전면화한다. 부르주아의 속물 근성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플롯이 주제를 암시한다. 영화는 북적거리는 거리 풍경으로 열린다. 은이가 수많은 행인 틈에서 불쑥 나타난다. 그녀는 소시민의 대표선수 격이다. 영화는 대저택 앞에서의 화려한 생일파티로 닫힌다. 그 사이, 은이는 지상에서 사라진다. 계절은 한겨울을 지나 봄이 된다. 그러나 견고한 계급의 벽, 천박한 부르주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은이는 강물에 던져진 돌멩이에 불과했다. 강물은 돌멩이 하나 때문에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감독은 그 부조리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계급 문제의 밑바탕에 인간의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욕망의 스펙트럼은 넓다. 성적인 욕망(훈), 신분상승의 욕망(은이와 해라), 복수의 욕망(은이) 등이다. 은이의 모성본능까지 개입된다. '하녀'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서의 계급, 인간 본능으로서의 욕망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굴러간다.
'하녀'의 문제의식은 새롭지 않다. 그럼 어떻게 전형성을 벗어날까. 감독은 히치콕이 말한 서스펜스를 거론한다. 식당의 테이블 밑에 시한폭탄이 설치돼 있다. 그 사실을 관객은 알고, 인물은 모른다. 폭탄은 언제 터질 지 알 수 없다. 이때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다. 유감스럽게도 '하녀'에서는 그런 서스펜스를 느낄 수 없다. 훈과 은이의 불륜 정사도, 병식이 이를 발견하는 장면도, 그저 일상처럼 느껴진다. 인물과 사건의 내밀한 흐름을 따라 진행되지 않고, 몇 개의 덩어리를 툭 던져놓은 것처럼 거칠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뛰는 듯한 전개는 몰입을 방해한다.
욕망의 실체도 다소 모호하다. 훈의 욕망은 동물적이고 마초적이다. 해라와 어머니의 욕망은 미래의 권력이다. 이들의 욕망은 수학공식 같아서 혼란스럽지 않다. 그럼 주인공 은이의 욕망의 실체는? 이 지점에서 영화는 모호해진다. 은이는 매우 복합적이다. 이혼녀인데 소녀마냥 해맑고 순수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훈과의 섹스는 전혀 강제적이지 않다. 이혼녀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은이는 친구에게 훈을 유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은이는 백지처럼 순수하고, 요부처럼 뜨겁다. 모성 본능도 표출한다. 그렇다면 은이는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다. 실패한 팜므파탈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내 안의 나'가 너무 많다. 게다가 다양한 캐릭터로 변화하는 과정이 분명하지 않다. 관객은 영화의 주제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데 혼란을 느낀다.
훈이 장모에게 "감히 내 아이를…"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희극적이다. 절대 권력자 왕을 둘러싼 왕비와 후궁의 권력투쟁을 다룬 조선시대 궁중사극같은 인상을 준다. 감독 말대로 웰메이드 치정극, 막장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시대성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하녀'는 동시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구체적인 무엇이 없다. 계급, 욕망과 관련된 일반론을 보여줄 뿐이다. 지금, 이곳의 삶이 투영돼 있지 않다. 한가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이는 사실 의외다. 임상수야말로 당대의 사회문제, 동시대인의 숨겨진 욕망을 거침없이 파헤쳐 온 대표적인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원작에 없는 인물이 눈에 띈다. 병식과 훈의 장모다. 그런데 속물인 장모는 딸 해라의 캐릭터와 겹쳐진다. 하나로 통합했다면, 갈등 구조가 훨씬 간결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불필요한 혹은 억지스러운 노출, 앞뒤 설명없이 툭 불거져나온 장면도 일부 눈에 띈다. '하녀'는 작품 그 자체로도, 감독의 작품 세계의 맥락 안에서도, 원작과 비교해서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연출 의도와 작품의 완성도는 별개다. 감독은 윤여정, 전도연 두 여배우에게 많은 빚을 졌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
뚱보 친구와 비좁은 원룸에서 살던 은이에게 훈의 대저택은 별천지다. 최고급 음식과 와인, 그림, 클래식으로 포장돼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추악한 본능이 꿈틀거린다. 훈에게 은이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일 뿐이다. 해라와 어머니의 권력을 향한 집념은 소름돋는다. 은이는 얼핏 상류사회의 성벽에 부딪쳐 산산조각난 희생양처럼 보인다.
'하녀'의 주제는 명확하다. 계급 문제를 전면화한다. 부르주아의 속물 근성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플롯이 주제를 암시한다. 영화는 북적거리는 거리 풍경으로 열린다. 은이가 수많은 행인 틈에서 불쑥 나타난다. 그녀는 소시민의 대표선수 격이다. 영화는 대저택 앞에서의 화려한 생일파티로 닫힌다. 그 사이, 은이는 지상에서 사라진다. 계절은 한겨울을 지나 봄이 된다. 그러나 견고한 계급의 벽, 천박한 부르주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은이는 강물에 던져진 돌멩이에 불과했다. 강물은 돌멩이 하나 때문에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감독은 그 부조리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계급 문제의 밑바탕에 인간의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욕망의 스펙트럼은 넓다. 성적인 욕망(훈), 신분상승의 욕망(은이와 해라), 복수의 욕망(은이) 등이다. 은이의 모성본능까지 개입된다. '하녀'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서의 계급, 인간 본능으로서의 욕망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굴러간다.
'하녀'의 문제의식은 새롭지 않다. 그럼 어떻게 전형성을 벗어날까. 감독은 히치콕이 말한 서스펜스를 거론한다. 식당의 테이블 밑에 시한폭탄이 설치돼 있다. 그 사실을 관객은 알고, 인물은 모른다. 폭탄은 언제 터질 지 알 수 없다. 이때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다. 유감스럽게도 '하녀'에서는 그런 서스펜스를 느낄 수 없다. 훈과 은이의 불륜 정사도, 병식이 이를 발견하는 장면도, 그저 일상처럼 느껴진다. 인물과 사건의 내밀한 흐름을 따라 진행되지 않고, 몇 개의 덩어리를 툭 던져놓은 것처럼 거칠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뛰는 듯한 전개는 몰입을 방해한다.
욕망의 실체도 다소 모호하다. 훈의 욕망은 동물적이고 마초적이다. 해라와 어머니의 욕망은 미래의 권력이다. 이들의 욕망은 수학공식 같아서 혼란스럽지 않다. 그럼 주인공 은이의 욕망의 실체는? 이 지점에서 영화는 모호해진다. 은이는 매우 복합적이다. 이혼녀인데 소녀마냥 해맑고 순수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훈과의 섹스는 전혀 강제적이지 않다. 이혼녀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은이는 친구에게 훈을 유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은이는 백지처럼 순수하고, 요부처럼 뜨겁다. 모성 본능도 표출한다. 그렇다면 은이는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다. 실패한 팜므파탈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내 안의 나'가 너무 많다. 게다가 다양한 캐릭터로 변화하는 과정이 분명하지 않다. 관객은 영화의 주제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데 혼란을 느낀다.
훈이 장모에게 "감히 내 아이를…"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희극적이다. 절대 권력자 왕을 둘러싼 왕비와 후궁의 권력투쟁을 다룬 조선시대 궁중사극같은 인상을 준다. 감독 말대로 웰메이드 치정극, 막장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시대성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하녀'는 동시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구체적인 무엇이 없다. 계급, 욕망과 관련된 일반론을 보여줄 뿐이다. 지금, 이곳의 삶이 투영돼 있지 않다. 한가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이는 사실 의외다. 임상수야말로 당대의 사회문제, 동시대인의 숨겨진 욕망을 거침없이 파헤쳐 온 대표적인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원작에 없는 인물이 눈에 띈다. 병식과 훈의 장모다. 그런데 속물인 장모는 딸 해라의 캐릭터와 겹쳐진다. 하나로 통합했다면, 갈등 구조가 훨씬 간결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불필요한 혹은 억지스러운 노출, 앞뒤 설명없이 툭 불거져나온 장면도 일부 눈에 띈다. '하녀'는 작품 그 자체로도, 감독의 작품 세계의 맥락 안에서도, 원작과 비교해서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연출 의도와 작품의 완성도는 별개다. 감독은 윤여정, 전도연 두 여배우에게 많은 빚을 졌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