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프로기사들 "야구로 한판 붙자"

한·일 양국 프로기사들이 바둑판 아닌 야구장에서 자웅을 겨룬다. 관서기원 소속 프로기사 25명으로 구성된 야구팀이 내한, 내달 1일 국내 기사 야구단 '기(棋)'와 난지도구장에서 '역사적' 첫 경기를 갖기로 한 것. 지난달 서울서 열린 15회 LG배 통합예선 때 양국 젊은 기사들 간에 얘기가 나온 끝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야구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한 나라. 바둑 쪽이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관서기원 야구부만 해도 50년 역사를 자랑한다. 요즘도 일본기원 팀, 관서기원 장기연맹 팀 등과 교류전을 치르곤 한다. 고(故) 하시모토(橋本昌二) 같은 대가도 반세기 전 관서기원 야구선수로 뛰었다.

국내 프로기사들로 구성된 '기(棋)' 팀은 2005년 창단, 올해 6년째를 맞는다. 2007년부터 연예인리그에 참가해 지난해 10팀 중 7위를 했고, 올해는 사회인 3부리그 12개 팀 중 선두(현재 3승 중)를 달리고 있다. 단위 합계 123단에 이르는 '기(棋)'는 6월부터 시작될 올해 연예인리그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17명으로 구성된 '기(棋)' 팀의 마운드는 왼손 한종진(주장)과 우완 이현욱이 번갈아 맡는다. 김영삼 윤현석 김승준 등 '30대 원로'들이 공격의 주축. 특히 윤현석은 5년 팀 역사에서 단 두 차례 나왔던 홈런의 주인공인데, 그러나 요즘은 다소 슬럼프에 빠져 있다.

유격수인 백홍석이 톱 타자로 나서고 1루수 양건, 중견수 최철한, 포수 박병규의 수비력도 안정적이다. 이 밖에 이정우 홍장식 이용찬 박승철과 최근 입단(入團)한 안조영 등도 일취월장 중이다. 강진규 총감독은 "치열한 주전 경쟁 속에 선수들의 자신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관서기원 야구팀은 48세의 하야시(林耕三) 六단에서 18세 호시카와(星川航洋) 二단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령대가 특징. 그러나 30대 이상 11명에 40대가 4명으로 전체적으론 한국 팀보다 높다. 에이스는 32세의 요코다(橫田茂明) 九단. 유카와(湯川光久·43) 구라하시(倉橋正行·42) 나카노(中野泰宏·32) 세토(瀨戶大樹·26) 등 유명 기사들도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관서기원 야구팀은 매년 야구 합숙까지 한다는 소문이지만, 감독 겸 총무 마에다(前田亮) 六단은 "연습량 부족으로 우리 스스로 '세계 최약체 야구팀'이라고 부른다"며 엄살이다. 이들은 매년 1회씩 스포츠 테마여행을 갖고, 이번 원정도 그 일환이란 사실이 밝혀지자 한국 팀 선수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

프로기사들끼리 만났는데 바둑 대결이 빠질 수 없다. 야구 경기 다음 날인 1일엔 '약간의 자금'을 걸고 희망자에 한해 개인전이 펼쳐진다. 야구 종료 직후 국내 프로 연구 모임인 소소회 주축으로 양국 간 축구 '번외경기'를 갖는 것도 검토 중이다. 축구는 원성진 박정상 송태곤 목진석이 주축인데, 백홍석 한종진 이정우 등 스포츠광(狂) '야구선수'들의 겹치기 출전이 유력하다.

'기(棋)'의 구단주를 맡고 있는 곽민호 사이버오로 부사장은 "승패를 떠나 양국 교류에 디딤돌이 될 것 같아 흐뭇하다. 앞으로 정례화가 됐으면 한다"며 큰 기대를 표시했다. 이 행사를 중간에서 연결해준 한국 출신 윤춘호 관서기원 소속 프로는 "출국을 앞둔 기사들 모두 진짜 선수라도 된 양 설렌 표정"이라고 일본 쪽 분위기를 전했다. 관서기원 선수단은 31일 내한, 6월 2일 출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