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줄줄이 새로운 도전이에요. 서스펜스나 공포, 정통 액션, 전쟁물.... 안 해 본 게 아직도 많아요."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국방의 의무에서 벗어난 40세 나이에 극 속에서 군복을 입었다. 벌써 불혹의 나이. 그 동안 많은 영화를 찍었지만 제복을 입은 모습도, 걸쭉한 사투리 연기도 처음이다. 3년 만의 영화 출연작 '꿈은 이루어진다'로 돌아온 배우 이성재 이야기다. 머리를 회색으로 물들이고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이성재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찌 보면 참 신기하죠. 만 40세가 되면서 이제 민방위조차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군대하고는 완전히 작별한 셈인데 그 시점에 군대 영화를 찍게 됐네요. 하지만 남자들이나 좋아할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하."
대학 때 정훈병으로 일찌감치 군 복무를 마친 이성재는 극중 참 특이한 군대에 투입됐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북한군의 시점에서 풀어가는 얘기다. 이성재는 이 영화에서 알아주는 축구광인 DMZ 북한 43GP의 1분대장을 연기한다. 히딩크, 차범근은 물론 2002년 한국 국가대표팀 멤버들을 줄줄이 꿴다. 북한에 정말 저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1분대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 중계를 몰래 듣다 고난에 휘말리게 된다. 한국을 응원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해 응원구호 '대~한민국' 대신 '우~리민족'을 외치는 북한군 이성재의 모습이 꽤나 그럴싸하다. "사투리 연기는 처음이지만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탈북한 분이 북한말로 녹음한 대사를 외워서 연기했거든요. 또 우리 녹음 관련 스태프 중에도 북에서 온 친구가 있어서 감수를 받았어요."
이번 영화를 하면서 북한 동포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당연히 폐쇄적이지만 중국을 통해 들어온 한국 드라마도 암암리에 꽤 많이 본대요. 그래서 우리 영화 같은 스토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사투리 연기보다 제작과정의 다른 부분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이성재는 북한 병사들이 듣는 라디오 중계방송의 제작비화를 공개했다.
"원래는 SBS 신문선 해설위원의 진짜 중계를 따다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SBS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았고, 타 방송사도 안 되더군요. 그래서 신문선 위원의 성대모사에 가장 능하다는 개그맨과 부산에서 활동중인 캐스터가 가상 녹음한 것을 영화에 썼지요. 그런데 영화 본 사람들, 아무도 모르던데요?(웃음)"
이성재는 여전히 할 것이 많다고 했다. 어떤 역도 맡을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캐릭터는 물론 장르도 공포, 정통액션, 전쟁물...안 해본 게 아직도 많습니다. 여전히 욕심이 나죠. 그런데 70년대 같으면 저같이 평범한 얼굴에, 40대 된 배우가 영화 주연 맡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한)석규 형한테 감사해야죠. 그 형이 길을 잘 뚫어줘서....(웃음) 저처럼 쌍꺼풀 없고 친근한 얼굴도 주인공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수염을 기른 모습이 관록 있어 보인다는 말에 그는 손을 내저었다. "어휴, 관록은 무슨.... 이제 오빠 소리가 그리워요. 3년 전만 해도 스태프들이 다들 '오빠'라고 했는데 이젠 '선배'라네요. '선생님' 아닌 게 다행이지...."
수염을 기른 이유는 다음 영화인 '수수께끼'를 위해서다. 3D로 제작되는 '수수께끼'는 또 어떤 작품인지 살짝 물어보았다. "두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회상을 다룬 영화입니다. 더 이상은 비밀이에요. 또 새로운 모습을 보시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