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포스트 임상수·김기덕"

제63회 칸 영화제에는 덜 알려진 한국의 신예 감독이 두 명 진출했다. 칸의 비공식 프로그램인 비평가 주간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Bedevilled)'을 출품한 장철수(36) 감독과, 대학생 단편 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 '얼어붙은 땅(Frozen Land)'을 초청받은 김태용(23) 감독이다. 두 사람 모두 해외 영화제에 처음 초청됐으며 프랑스에 온 것도 처음이다. 두 젊은 감독을 칸 해변에서 각각 만났다.

"김기덕 감독님의 조감독 출신이어서 칸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외신기자들도 김 감독님 관련된 질문을 가장 많이 했고요."

장철수 감독은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2002)' 연출부 스태프로 영화에 입문했다. 이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사마리아'의 조감독을 거쳤다. 칸에 초청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외딴 섬에서 성적 학대를 당하던 여인이 마을 주민을 모두 살해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시간을 멈추게 할 만큼 큰 사건들, 인간의 존엄성을 뒤흔드는 사건들에 바탕을 두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실제로 '김부남 살인사건'이란 사건도 있었고 밀양 여중생 성폭행사건도 참고했습니다." '김부남 살인사건'이란 지난 1991년 어릴 적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를 살해한 여자에게 법원이 관대한 형량을 선고했던 사건이다.

"저는 어렸을 때 영화를 싫어했어요. 강원 영월 산골에서 자랐는데 아예 극장이 없었고 고교를 충북 제천에서 다닐 때도 영화 관람은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재수하던 시절 '택시 드라이버'와 '시네마 천국' 같은 영화를 보면서 '좋은 영화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에 다니던 그는 일본 영화에 관심을 갖고 일본에 유학 갔다가 그곳 비디오대여점에서 김기덕 감독의 '섬'을 만났다. "갑자기 멍해지더라고요. 일본에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영화는 김기덕 감독님이 다 만들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해안선' 연출부를 마친 뒤엔 '하나도 배운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작품 스태프를 자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감독님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워낙 본능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찍는 분이니까요. 딱 한 가지는 말씀하셨죠.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영화 시사회에서는 큰 박수와 휘파람 소리가 극장을 뒤덮었었다. 장 감독은 "잔인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여고생들이 제게 와서 '잘 봤다'고 말해줄 때는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세종대 영화예술과 2학년 휴학 중인 김태용 감독은 현재 부산 사회복지시설에서 공익근무 중이다. 칸 방문이 자신의 첫 해외여행이며 레드 카펫 행사 때문에 양복도 처음 사봤다는 그는 고교생처럼 앳된 얼굴이었다.

"지난 2월에 칸에 제 영화를 보냈어요. 칸은 실력보다는 취향을 중요시할 것 같아서 초청받는 게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의 36분짜리 단편 영화는 중국인 밀입국자들과 그들을 협박해 돈을 빼앗는 한국인들을 다룬 작품이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커져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한다. 이 작품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유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어요. 국내 신문기사에 나오는 밀입국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노동자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김 감독은 경남고 2학년 때 30분짜리 단편 영화를 처음 찍은 뒤 이번 작품이 7번째 영화다. 그는 "영화를 다양하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부산이 고향이어서 부산영화제에 어릴 적부터 다녔다"고 했다. 영화제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을 보고난 뒤 '나도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저는 '영화제 영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영화제에 모이는 다양한 영화들이 각 나라의 사회문제와 청년들의 고민을 그리고 있거든요. 그것을 한국 상황에 대입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이창동·임상수 감독을 좋아한다는 그는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감독님들과 함께 칸에 오게 돼서 정말 기분 좋다"며 "영화제에 오니까 역시 '이야기'의 중요성과 영화에 대한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긴다. 낭만과 감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칸 초청장을 받은 뒤 두 달 정도는 잠을 제대로 못 잘 만큼 바빴다. 작품에 영어자막을 넣는 것을 비롯해 할 일이 무척 많았다고 했다. 그는 "이제 칸에 왔으니 낮잠이나 진하게 한 번 자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