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손'(1954년)의 여간첩.
'빨간 마후라'(1964)의 바걸.
'남과 북'(1965)의 삼각여인.
'전쟁과 여교사'(1966)의 교사.
'원산공작'(1976)의 여장교.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이름을 날린 추억의 전쟁영화들이다. '여배우가 한국영화를 먹여살렸다'는 1970년대만 해도 여배우는 곧잘 전쟁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빨간 마후라'의 윤인자와 '원산공작'의 태현실이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뿐, 주연상은 늘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래도 여배우들은 당대 파격의 주인공으로 군림했다.
윤인자의 '운명의 손'. 한국전쟁직후 정애(윤인자 역)는 카바레 마담이자 여간첩이다. 마치 세기의 여간첩 마타하리를 연상시키듯 마가렛으로 통한다. 간첩을 쫓는 국군정보대위와 애정관계에 빠지고 결국 그를 위해 희생되는 가련한 여간첩이다. 그런데 대위 이향과 여간첩 윤인자의 키스신이 당시 장안에 화제였다. 국내영화사상 최초의 키스신. 입술에 비닐을 대고 5초간 입술을 포갰는데, 당시로선 난리났다. 연애의 충격을 몰고온 '자유부인'(김정림 주연)보다 2년이나 빨랐다.
윤인자는 3년뒤 영화 '전후파'에선 현대판 호스티스로 출연, 국내 최초의 누드신(알몸 목욕신)으로 또한번 화제를 몰고왔다.
그리고 10년뒤 불멸의 한국전 영화라는 '빨간 마후라'. 신영균, 최무룡, 남궁원 등 당대 남배우 빅3가 총 출동했다. 그러나 이 영화로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신상옥 감독은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윤인자를 올렸다. 한국전때 강릉공군기지에서 평양폭격에 나선 공군장교가 바걸과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바걸로 등장한 윤인자가 바의 마담 최은희보다 한층 인상이 깊었던 것은, 남우주연상을 탄 신영균과의 애정속 격렬한 키스신이 두고두고 회자됐기 때문이다. 격렬한 키스신으로 국내 영화사에 또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한국전 영화 첫 여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엄앵란도 빼놓을 수 없다. 국군의 아내인 그녀를 잊지못해 귀순한 인민군 장교와의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 '남과 북', 6ㆍ25때 피난을 못했는데 인민군의 동태파악후 북의 남하를 막았다는 실화 '전쟁과 여교사'에서 주연을 맡았다.
군부의 서슬퍼런 1980년대에는 거의 전쟁영화가 없던 시대라 여주인공의 맥이 끊겼다.
1990년대 이후 재등장했으나 여배우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남부군'(1990)의 최진실.
'하얀전쟁'(1992)의 심혜진.
'태백산맥'(1994)의 정경순.
'태극기 휘날리며'(2003) 이은주.
'웰컴 투 동막골'(2005)의 강혜정 등이 드문드문 전쟁 여배우의 맥을 이었다.
이중 '남부군'의 최진실, '태백산맥'의 정경순, '월켐 투 동막골'의 강혜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고인이 된 최진실은 남부군에서 북한종군기자였다가 후에 빨치산 리더가 된 안성기를 간호한 박미자역, 정경순은 해방후부터 한국전쟁까지 극심한 좌우대립의 표본이 된 형제의 어머니인 죽산댁, 강혜정은 국군과 미군, 인민군이 동막골 주민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꽃머리 백치소녀로 여운을 남겼다.
2008년은 일명 여배우 전쟁사에서 커다란 획이 그어졌다. '님은 먼곳에'의 주인공 수애가 거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비록 베트남전쟁이었지만 국내 전쟁영화의 여우주연상은 파격, 그 자체였다. 시어머니 바가지속에 가끔 동네 아줌마들 앞에서 노래하고, 군대간 남편 면회하던 시골 아낙이 "니 내 사랑하나?" 라는 남편의 물음에 말 못하다 베트남에 자원한 남편을 찾아 베트남위문단의 보컬(써니)로 전쟁에 뛰어든 영화.
미군과 일본게이샤의 사랑을 그린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1904년)과 미군과 베트남바걸의 이룰수 없는 사랑을 그린 뮤지컬 '미스 사이공'(1989년)의 장면이 오버랩되는 전쟁과 여인의 영화로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