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듯 말듯, 볼륨을 높이지 않는 남자

콜린 퍼스의 연기를 보는 것은 오디오의 볼륨을 최대의 절반쯤으로 줄이고 듣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언제나 전부를 보여주지 않고 감정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법도 거의 없다. 넘어설 듯 넘어서지 않는 주파수, 키울 듯 키우지 않는 볼륨.

콜린 퍼스는 늘 뻔뻔하고 자신만만한 휴 그랜트와는 사뭇 다른 무뚝뚝한 목소리, 쑥스러운 어투, 어색하게 흘끔거리는 눈빛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곁눈질해서 바라본다. 건장한 몸집의 남자가 자꾸 머뭇거리며 할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여자 입장에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 노릇이다. 그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흘러나온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부터 '러브 액츄얼리'와 '맘마미아!'까지,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그의 멜로 영화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고백을 해도 속이 터지고,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그래서 그는 30대 중반 나이에 여성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이상한 로맨틱 가이가 되었다. 여자들은 콜린 퍼스의 완벽함이 아니라 모자란 연애능력에 끌렸다. 그로부터 9년여가 흐른 지금, 콜린 퍼스가 넓혀나간 연기 지평은 새삼 놀랍다.

콜린 퍼스는 점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되어 가고 있다. 큰 보폭으로 움직인 적은 거의 없는데, 어느새 영화마다 자신의 인장을 꾹꾹 눌러 박는 독창적인 배우가 되었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제노바'에선 상처입은 가족을 묵묵히 안아주는 아버지의 얼굴을, '도리언 그레이'에선 작가 도리언을 쾌락의 세계로 인도하며 "결혼생활에 기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헨리 워튼 경을 연기했다.

그는 27일 개봉하는 톰 포드 감독의 섹시한 영화 '싱글맨'과 아넌드 터커 감독의 실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에 모두 출연했다. 두 작품에서 콜린 퍼스의 연기는 그의 인생을 읊조려준다.

'싱글맨'과 '아버지를…'은 모두 작가의 캐릭터가 분명히 연상되는 작품이다. '싱글맨'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고, '아버지를…'은 블레이크 모리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가 연출을 맡은 '싱글맨'은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의 자전적인 냄새가 흥건히 밴 영화. "패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단순함과 편안함"이라고 말하는 톰 포드는 이 연출 데뷔작에서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감정의 파도를 단순하고 편안하게 복기한다. 두 작품 모두 콜린 퍼스의 삶과는 무관한 작품들이다.

그런데도 두 영화에는 모두 콜린 퍼스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싱글맨'의 주인공이 차가운 밤바다에 첨벙첨벙 몸을 던지며 새로운 삶의 열망을 지펴갈 때, '아버지를…'의 블레이크가 평생 원망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얼굴을 반쯤 가리며 흐느낄 때,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콜린 퍼스 자신의 삶처럼 아릿하게 다가온다. '싱글맨'의 "때가 왔다"는 마지막 대사조차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마치 콜린 퍼스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알리는 알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높지 않은 데시벨로 격정적인 인생의 고뇌를 펼쳐낼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콜린 퍼스는 그런 흔치 않은 능력을 가졌고, 2009 베니스영화제와 2010 영국아카데미는 이에 열광적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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