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는 ‘춘향전’은 거짓이다! 익숙한 고전의 캐릭터를 뒤엎고 은근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 <방자전>이 개봉 전부터 화제다. 기녀의 딸로 태어난 춘향은 양반가의 며느리 자리를 꿰찰 뿐 아니라 이몽룡의 몸종인 방자까지 유혹한다. 이몽룡만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던 절개와 정조의 대명사 성춘향이 신분상승과 욕망을 모두 챙기는 여우같은 요염한 인물로 재탄생한 것. 춘향이가 양반이었던 이몽룡과 ‘짐승남’ 방자의 마음까지 모두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 성춘향, 젖가슴은 드러내고, 엉덩이는 부풀리다?
<방자전>은 18세기 조선의 한복과 동시대 서양의 로코코 스타일을 접목시킨 화려한 춘향이의 한복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의 코르셋처럼 허리가 잘록하고 전체적으로 풍성한 모양의 치마에 가슴이 보일 듯 짧은 기자의 저고리를 매치했다. 또 살이 비칠 듯 말 듯 섹시한 망사를 이용한 저고리에 밝은 색감과 화려한 장식을 가미한 것도 특징이다. 그렇다면 실제 춘향이가 입었던 조선의 한복은 어떠했을까?
조선 초기의 긴 저고리는 점차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짧아져 섹시한 형태로 변화했다. 그에 비하여 치마는 상대적으로 볼륨감 있게 풍성해졌다. 저고리의 길이가 파격적으로 짧아지기 시작한 때는 영, 정조 시대다. 이 시기 저고리의 길이는 겨드랑이조차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한편, 치마는 저고리가 짧아지는 경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허리 위로 올라가게 되어 풍만한 가슴을 살짝 가려주는 형태로 변화했다. 가녀린 상체에 단단히 조여진 치마는 가슴을 더욱 풍성해보이게 했다. 더불어 치마 속에 입는 속옷은 보온과 내의라는 본래 기능보다 하체를 강조하는 기능으로 바뀌었다.
이런 옷차림은 조선시대의 기녀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이는 건강한 생식능력을 표출하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기생의복은 수수하지 않고 선명한 빛깔이 있는 한복이었기 때문에, 섹시코드로도 손색이 없다. 양반집 규수의 의복은 정갈했던 반면, 기생의 의복에는 섹시함과 도도함이 배어있다.
◆ 성춘향, 열녀 아닌 요부다?
<춘향전>에는 춘향이가 16세의 나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성행위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성춘향은 열녀나 요조숙녀라기보다는 요부로서의 기질을 타고났던 걸까? 춘향의 어머니는 관기였기 때문에, 춘향이는 기방에서 성지식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몽룡은 어디에서 성지식을 습득했을지 궁금해진다. 조선시대 남자들은 서당에서 천자문만 배운 것이 아니다. 성지식도 배웠다. 서당에서는 논어 공부를 끝낸 학생들에게 '보정(保精)'이라는 생리철학을 가르쳤다.
보정이란 성생활에 대한 지식으로, 절도 있는 몸가짐을 가지고 이로운 성생활을 하도록 하는 성교육이었다. 또, 남자들은 친척집에서도 성교육을 받았다. '삼촌 집 사랑들이'라고 불리는 이 풍속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직접 성교육 시키는 것을 민망히 여겨 생겨났다.
또, 당시 사대부들은 ‘춘화첩’을 통해 성생활을 상상하기도 했다. 춘화란 대체로 최음을 목적으로 남녀의 성풍속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19세기에는 풍속화의 한 경향으로서 성희묘사를 직설적으로 담은 춘화첩이 유행하였다. 춘화 중에는 남녀 간의 성 결합 장면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도 있고, 남녀가 만나는 즐거움 자체를 그린 그림도 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춘화에는 풍속화가로 유명한 김홍도나 신윤복의 작품이 대부분이고, 주로 기녀를 상대로 성애를 즐기는 모습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참고서적 :「조선의 섹슈얼리티(가람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