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추격 없는 巨匠의 '과묵 스릴러'

흥미진진한 스릴러에 반드시 추격과 총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영화 '유령 작가(2일 개봉)'에서 입증한다. 평범한 사람이 우연히 음모의 틀에 갇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시종 고요하고 잔잔한 가운데 마지막 반전을 향해 긴장을 쌓아올린다. 영화의 원작인 영국 작가 로버트 해리스 소설의 소재가 워낙 좋은데다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색감과 앵글, 날씨로 스릴러를 만들어 내는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다.

전 영국 총리 애덤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자서전을 대신 집필하던 작가가 갑자기 죽고 다른 작가(이완 맥그리거)가 거액을 받는 조건으로 이 일을 떠맡는다. 그 직후 랭은 수상 재직 중 테러 용의자를 불법으로 가두고 미국에 넘긴 혐의로 함께 일했던 장관으로부터 고발된다. 랭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지 않는 방법은 현재 머물고 있는 미국을 떠나지 않거나 국제사법재판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로 가는 것이다. 한편 자서전을 대필하던 유령 작가는 자신의 전임 작가가 갑자기 죽은 것이 사고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누군가 자신을 꾸준히 미행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 남자가 바다에 빠져 숨진 채로 발견된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한 유명 정치인의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그의 대리 작가가 숨진 것이다. 정치인의 자서전 원고를 중간에 가로채려는 세력과 이를 지키려는 정치인의 줄다리기에서 긴장을 끌어낸 원작의 솜씨가 뛰어나다(원고 뭉치가 시한폭탄이라니!).

폴란스키 감독은 폭풍우 대신 가랑비를, 맹렬한 추격 대신 평범한 도주를 그림으로써 할리우드 스릴러 문법을 피한다. 대신 회색의 날씨와 자연광만 있는 실내, 추워 보이는 배우의 표정들로 서스펜스를 기다리는 관객의 심리를 자극한다.

그렇기에 폭발과 비명과 경악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겐 좀 심심할 수도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서전의 비밀이 한 방에 밝혀지면서 영화는 갑자기 시시해진다. 게다가 그 비밀의 열쇠도 할리우드에서 무척 자주 써먹었던 방식이다.

[시네 업데이트] 음란하고 영악한 '춘향전' - 8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