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개봉작 다이어리'] 패션화보 같은 게이의 삶… 너무 우아해 김 샜네

요즘 '싱글맨'이나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게이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가 부쩍 많아졌다. 국민여동생, 국민배우란 말은 들어봤어도 '국민게이'란 제목의 기사가 버젓이 나올 정도면, 성적 소수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의 유무를 떠나 적어도 '게이'란 말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런 제목의 기사를 쓰고 싶어졌다. 싱글맨의 인생은 아름다운가!

디자이너가 영화를 만들거나, 사업가가 호텔 웨이터가 되거나, 의사가 난데없이 요리사가 되는 것.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될 때가 있다. 사실 톰 포드는 패션을 예술이 아닌 마케팅의 대상인 산업으로 바라본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58세쯤으로 보이던 구찌를 28세의 섹시한 디바로 변신시킨 그 아닌가.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나는 디자이너 톰 포드가 감독으로 나선 이 영화에서 좀 다른 것을 보길 원했었다.

그런데 그가 디자인한 고독과 상실의 이음매는 너무 익숙했다. 동성애자인 대학교수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종종 '공허함'이란 주제로 진행한 패션지 화보처럼 보였고, 영화에 나오는 대학생들은 하나같이 '랄프 로렌' 광고에 나오는 모델 같았다. '넥타이는 윈저방식으로'라고 쓴 주인공의 마지막 메모는 직업적 강박증의 일면처럼 느껴졌다. 감독 자신이 '게이'이기 때문에 좀 다른 접근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솔직히 김이 샜다. 영화가 끝나자 공허함과 허기가 몰려왔다. 아마도 톰 포드적으로 재단된 주인공들의 매끈한 '몸' 때문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인상적인 건, 작가가 '게이'를 드라마에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미국 드라마나 영화 속의 게이처럼 지독히 수다스럽거나, 패셔너블하지 않은 그저 평범한 가족 구성원 중의 하나일 뿐인 게이를 창조한 것이다. 사회적 구호 속의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아들'과 '딸'의 문제가 될 때, 우리는 그것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다.

'게이'란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를 엄마가 "너무 오만했어. 다른 집 일인 줄만 알았어"라는 대사에 눈물을 흘릴 때, 나는 김수현식 '홈드라마'의 엄청난 파급력을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결국 '태도'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톰 포드의 너무나 우아한 영화는 절반만 성공했다.

싱글맨의 인생은 아름다운가. '싱글맨'이 아니라 '싱글녀' 혹은 '노인', '외국인 노동자'라는 '명사'를 집어넣는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저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일 뿐인 것이다. 어쩌다가 나는 영화 '싱글맨'이 싱글이 싱글싱글 웃는 얘기냐고 묻던 결혼한 친구의 농담이 떠오른 걸까.


싱글맨

감독: 톰 포드 개봉: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