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수교 20주년 기념] '솔숲에 부는 바람, 한국미술 오천년' 특별전 개막

전체 면적 1103㎡(약 333평)에 이르는 전시장의 문이 열리자, 황금빛 찬란한 신라 금관이 입구 중앙에서 러시아 관람객들을 맞았다. 보물 339호인 경주 서봉총 금관에 달린 수십개의 순금 영락(瓔珞·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본 러시아 관람객들은 "빛의 물결처럼 신비롭고 아름답다"며 탄성을 질렀다.

1일 오후 2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 니콜라예프스키홀. 조선일보가 창간 90주년과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개최하는 《솔숲에 부는 바람, 한국미술 오천년》 특별전 개막식이 열렸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9월 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러시아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최초의 대형 특별전이다. 지난 1991년 조선일보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유물을 대여해 성황리에 개최했던 '스키타이 황금'전(展)에 대한 교환전시이기도 하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국보 제91호), 화순 대곡리에서 출토된 팔주령(국보 143호), 청자거북이모양 주자(보물 452호) 등 국보 2점과 보물 10점을 포함해 모두 237건 354점의 문화재가 넓은 전시공간을 가득 메웠다.

전시는 한국문화를 시대별로 보여주는 5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1부 선사~삼한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마제석검 등에 이어, 2부 삼국시대의 금령총 금관 드리개와 경주 계림로 보검 등을 둘러보며 관람객들은 '금(金)의 왕국' 신라의 미를 감상했다. 특히 경주 황남동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굴된 장식보검 옆에 에르미타주박물관이 소장한 카자흐스탄의 보로보에 출토 장식보검이 나란히 놓여 눈길을 끌었다. 두 보검(寶劍)은 형태와 재질, 장식기법이 거의 비슷해 5~6세기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의 문화교류를 보여준다.

3부 통일신라시대는 금동불상, 와당, 인화문 토기, 4부 고려시대는 금속장신구, 향로, 금동보살상, 고려청자, 5부 조선시대는 분청사기, 백자, 목(木)가구, 풍속화 등으로 구성됐다. 은은한 조명을 받아 달항아리 바닥에 그림자가 겹겹이 비치는 모습을 본 관람객 나탈리야 아라포바(55)씨는 "한국의 달이 떠 있는 것 같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인사말에서 "한국 역사를 아우르는 문화유산 354점을 한자리에 모으는 뜻깊은 전시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에서 열리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피오트롭스키 에르미타주박물관장은 "20년 전 스키타이 전을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양국 수교 20주년을 맞아 한국문화 특별전을 열게 돼 감격스럽다"고 했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은 1764년 예카테리나 2세가 플랑드르 및 네덜란드 회화 컬렉션과 왕족·귀족들의 소장품을 전시한 것에서 시작됐으며 19세기 말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고대 스키타이족의 보물과 중앙아시아 유물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마티스 등의 작품까지 소장 유물만 300만점에 달한다.

이날 특별전 전시장은 개막 첫날부터 500여명의 입장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개막식 행사에는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이윤호 주러시아대사, 이석배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 승인배 조선일보 문화사업단장, 루드밀라 알렉산드로바 러시아박물관연합회장, 유리 치스토프 러시아 표트르대제 인류학·민족지학박물관장 등 한·러 관계자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