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시네마 오디세이' - '시'와 '하하하'
입력 : 2010.06.04 13:38
| 영화로 시를 읽고, 시로 영화를 보고… |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시'(감독 이창동)와 '하하하'(감독 홍상수)가 나란히 수상했다. '시'는 각본상, '하하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았다. 이 감독은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탔고, 지난해에는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이번에는 직접 수상자가 됐다. 홍 감독은 칸에 6번째 초청된 끝에 의미있는 상을 품에 안았다.
'시'와 '하하하'에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시, 시인, 시낭송회 장면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칸 수상작이라는 점을 핑계 삼아서 영화 속 시의 향취에 젖고, 시인의 자취를 따라가보자.
이 감독은 문단에서 인정받던 소설가 출신이다. '시'에는 김용택, 황병승 시인이 출연한다. 홍 감독의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는 소설가 김연수가 출연했다. 사실 영화와 문학은 관련이 많다. 시인 유하는 1993년 자신의 베스트셀러 시집 제목과 같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장석남 시인은 1997년 '성철'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삭발까지 해서 문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창동의 '시'에서는 정호승, 안도현, 조영혜의 시들이 낭송된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중략)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정호승 '그리운 부석사')
또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가 소개된다.
정호승, 안도현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로 갖추고 있는 드문 시인이다. 둘 다 사랑에 관한 시인데, 표현 방법은 매우 다르다. '그리운...'은 종교적이고, '너에게...'는 직설적이다.
영화에는 김용택, 황병승 두 명의 시인이 등장한다. 그들의 시 세계는 극과 극이다.
김용택은 '섬진강 시인'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섬진강 사람들, 농촌의 서정을 수채화처럼 풀어냈다.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가만히 있는 곳/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논과 밭과 함께/가난하게 삽니다'('섬진강15')라고 노래한다. 영화 '시'는 강물로 시작해서 강물로 끝난다. 내포된 의미는 다르지만, 김용택의 섬진강 시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황병승은 전통적인 시 문법을 파괴한 실험시로 유명하다. 그의 시 세계는 전위, 반항, 난해함으로 규정된다.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로 지난 몇 년간 시단을 뜨겁게 달군 '미래파 논쟁'의 중심에 섰다. 영화에서는 시 '사성장군협주곡' 중에서 '죽은 지 한 달이 지난 고양이 같은 하늘빛'이라는 표현이 소개된다.
영화에서 김용택은 시는 "일상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강생들에게 "사과 하나에도 시가 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황병승은 "시는 죽었다"고 외친다. 이창동 감독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시인들을 함께 등장시킨 이유는 뭘까. 형식에 관계없이 시(영화)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시를 쓴다는 것은/동지섣달 이른 새벽/관절이 부어 오른 손으로/하얀 쌀 씻어 내리시던/엄마 기억하는 일이다/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군불 지피시던/아버지 손등의 굵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조영혜 '시를 쓴다는 것')고 말이다. 여기서 시를 영화로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
'시'와 '하하하'에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시, 시인, 시낭송회 장면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칸 수상작이라는 점을 핑계 삼아서 영화 속 시의 향취에 젖고, 시인의 자취를 따라가보자.
이 감독은 문단에서 인정받던 소설가 출신이다. '시'에는 김용택, 황병승 시인이 출연한다. 홍 감독의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는 소설가 김연수가 출연했다. 사실 영화와 문학은 관련이 많다. 시인 유하는 1993년 자신의 베스트셀러 시집 제목과 같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장석남 시인은 1997년 '성철'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삭발까지 해서 문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창동의 '시'에서는 정호승, 안도현, 조영혜의 시들이 낭송된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중략)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정호승 '그리운 부석사')
또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가 소개된다.
정호승, 안도현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로 갖추고 있는 드문 시인이다. 둘 다 사랑에 관한 시인데, 표현 방법은 매우 다르다. '그리운...'은 종교적이고, '너에게...'는 직설적이다.
영화에는 김용택, 황병승 두 명의 시인이 등장한다. 그들의 시 세계는 극과 극이다.
김용택은 '섬진강 시인'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섬진강 사람들, 농촌의 서정을 수채화처럼 풀어냈다.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가만히 있는 곳/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논과 밭과 함께/가난하게 삽니다'('섬진강15')라고 노래한다. 영화 '시'는 강물로 시작해서 강물로 끝난다. 내포된 의미는 다르지만, 김용택의 섬진강 시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황병승은 전통적인 시 문법을 파괴한 실험시로 유명하다. 그의 시 세계는 전위, 반항, 난해함으로 규정된다.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로 지난 몇 년간 시단을 뜨겁게 달군 '미래파 논쟁'의 중심에 섰다. 영화에서는 시 '사성장군협주곡' 중에서 '죽은 지 한 달이 지난 고양이 같은 하늘빛'이라는 표현이 소개된다.
영화에서 김용택은 시는 "일상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강생들에게 "사과 하나에도 시가 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황병승은 "시는 죽었다"고 외친다. 이창동 감독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시인들을 함께 등장시킨 이유는 뭘까. 형식에 관계없이 시(영화)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시를 쓴다는 것은/동지섣달 이른 새벽/관절이 부어 오른 손으로/하얀 쌀 씻어 내리시던/엄마 기억하는 일이다/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군불 지피시던/아버지 손등의 굵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조영혜 '시를 쓴다는 것')고 말이다. 여기서 시를 영화로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
홍상수의 '하하하'는 통영이 배경이다. 통영 사는 여인과 사랑에 빠져 서울서 내려온 시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천재시인 백석이 주인공이다. 조선일보 기자였던 백석은 70여년 전 회사 동료 결혼식에서 통영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 세 차례나 통영을 찾았다.
하지만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백석은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중략)샘터엔 오구작작/물을 긷는 처녀며/새악시들 가운데/내가 좋아하는/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중략)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돌층계에 주저앉어서/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통영2')이라는 시를 남겼다. 사랑을 잃고 시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백석은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중략)샘터엔 오구작작/물을 긷는 처녀며/새악시들 가운데/내가 좋아하는/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중략)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돌층계에 주저앉어서/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통영2')이라는 시를 남겼다. 사랑을 잃고 시를 얻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