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 물러가면… 극장가에 피바람 분다

6, 7월 월드컵 열풍이 사그라질 때면 극장가에 '피바람'이 불 것 같다. 올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히는 유명 감독들의 신작 중 스릴러가 유독 많기 때문이다. 특히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이 내놓을 영화 '황해'와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는 유혈 낭자한 스릴러라는 소문이 벌써 영화계에 무성하다.

◆"가장 잔혹한 영화 나올 것"

7월 말~8월 초 개봉 예정인 '악마를 보았다'는 '충무로가 만든 가장 잔혹한 영화가 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하는 배우 최민식이 사석에서 "영화인데도 너무 끔찍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광포한 연쇄살인마와 그에게 약혼녀를 잃은 남자(이병헌)의 대결을 그린 이 영화는 현재 촬영이 85%가량 진행됐다. 김지운 감독의 첫번째 정통 스릴러가 될 이 영화는 현재 촬영 중인 영화 '혈투'의 각본·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 최민식은 작년 개봉한 전수일 감독의 독립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을 제외하면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첫 작품을 역시 스릴러로 택했다. 이 영화의 김재영 프로듀서는 "일부러 잔혹하게 찍는 것은 아니며 스릴러의 속성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올 여름 개봉 예정이었던 나홍진 감독의 두번째 영화 '황해'는 촬영이 늦어지는 바람에 연말로 개봉을 늦췄다. 현재 70%가량 촬영이 진행돼, 8월 중에는 크랭크업할 예정이다. 작년 12월부터 전국을 다니며 로케이션 촬영을 하고 있는데, 이상기온과 날씨로 촬영이 많이 늦어졌다.

중국에서 입국한 살인청부업자가 또 다른 살인청부업자에게 쫓기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나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의 투톱 김윤석과 하정우가 다시 두 주연배우를 맡았다. 여기에 살인을 의뢰한 사람(조성하)이 또 다른 축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추격자'가 망치와 정을 등장시킨 잔혹 스릴러이면서도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얻은 것에 비출 때, '황해' 역시 강렬한 연기와 화면으로 구성된 스릴러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이번 영화는 '추격자'에 비해 인간관계 묘사가 많고 정서적인 측면이 강조된 작품이 될 것"이라며 "잔혹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지만,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폭력성을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감독의 스타일이 다시 한번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시즌 직후 첫 스릴러는 7월 15일 개봉하는 강우석 감독의 '이끼'다. 박해일이 주연한 이 영화는 비록 피범벅 액션은 없지만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고도의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작품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제작 마무리 단계인 '파괴된 사나이(감독 우민호, 주연 김명민)'를 비롯, '아저씨(감독 이정범, 주연 원빈)', '심야의 FM(감독 김상만, 주연 유지태)'이 올 하반기 기대되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강렬한 장르와 캐릭터의 유혹

충무로의 스릴러 바람은 역시 '추격자'의 성공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추격자'는 끔찍하고 잔혹하지만, 관객들이 게임을 풀어나가는 묘미를 알게 된 계기가 됐다"며 "특히 젊은 관객을 중심으로 잔혹한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들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영화계에서 군소 장르에 불과했던 스릴러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코미디와 공포, 느와르, 액션을 두루 소화했던 김지운 감독이 '가장 드라마가 강한 장르'인 스릴러를 찍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강렬한 캐릭터는 톱스타급 남자 배우를 강력하게 유인하는 효과를 낸다. 최민식의 경우 '올드 보이'만큼 그를 국내외에 각인시킨 역할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사람들은 하정우의 모든 역할 중 '추격자'의 강렬하고 야비한 하정우를 제일 잘 기억한다"며 "스릴러는 감독과 배우 모두에게 도전해볼 만한 매력적인 장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