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닮아 네모난 보 하늘을 닮아 둥근 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은 11월 28일까지 서울 신사동 신사분관에서 '하늘을 땅으로 부른 그릇, 분청사기제기(粉靑沙器祭器)' 특별전을 갖는다. 조선 초기인 15세기에 분청사기로 만든 제사용 그릇 120여점을 전시하는 자리다.

제기 등 의례용 그릇은 금속으로 만드는 것이 예로부터 규범이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는 화폐와 무기를 대량제조하면서 금속이 부족해져서 당시 유행하던 분청사기로 제기를 만들기도 했다. 청자에 백토(白土)로 분을 발라서 다시 구워낸 분청사기는 조선 초기 경기도 광주 일대에 백자(白瓷)를 생산하는 관요(官窯)가 설치되기 이전에 성행했기 때문에 각 지방의 특성과 제작자의 개성이 오롯이 나타나 있다.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함과 실용적 형태도 매력이다.

이번 전시품들은 성격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1454)와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1474)에 수록된 '제기도설(祭器圖設)'에 담겨 있는 그릇의 규격과 제조방법 등에 맞는 것들이다. 여기에는 '땅은 네모나다'는 전통적 우주관을 반영해 사각형으로 만든 뒤 벼와 기장을 담았던 보,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 그릇인 궤, 향을 피워 하늘에 있는 혼(魂)을 모셔오는 역할을 하는 향로(香爐), 물과 술을 담는 항아리인 준(尊), 다리가 셋 달린 술잔인 작(爵), 제관(祭官)들이 손을 씻는 데 썼던 세(洗), 손을 씻을 때 물을 따랐던 그릇인 이 등 전형적인 제기들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살림살이에 썼던 그릇들이 제기로 활용됐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입은 좁고 어깨는 넓은 매병(梅甁), 납작하고 둥근 몸통에 짧은 목이 달린 자라병, 가루를 담는 데 주로 쓰인 병(甁), 술이나 간장 등을 다른 그릇으로 옮길 때 썼던 장군 등이 있다. 유진현 호림박물관 학예연구원은 "도자사 전공자들도 궤나 보의 깨진 파편 정도만 알고 있을 뿐 몸통과 뚜껑이 온전한 형태로 드러난 분청사기제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도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541-35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