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전면적 규제완화 없을듯… 분양가상한제 폐지 검토

"차라리 계약금 6000만원을 포기하고 싶지만, 건설사에서 해약도 안 받아줍니다."

경기도 수원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허모(47) 부장은 작년 10월 완공된 용인 흥덕지구 A아파트 138㎡(42평)형에 입주하지 못하고 있다. 잔금 1억8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주택자인 그는 지금 살고 있는 화성 동탄의 115 ㎡(35평)형 아파트를 처분해 새집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주택거래가 끊어지면서 4개월째 집이 팔리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팔려고 내놓은 집값은 4억5000만원에서 4억원 선으로 추락했다.

그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로 은행에서 추가 대출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입주도 못한 새 아파트의 관리비 10여만원과 잔금 연체료 20여만원, 중도금 대출 이자를 합쳐 매월 200만원 이상이 월급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주택 시장이 최악의 거래 침체에 빠져든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통해 실수요자의 거래 불편을 없애는 데 집중해 달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작년 9월 이후 규제 강화 쪽으로 돌아섰던 정부의 주택 정책 기조가 달라질 것인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지금 주택시장은 정상화되는 과정"

이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통해 2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주택시장 안정기조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실수요자의 거래불편은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집값 안정과 거래활성화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정책 목표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집값이 올라야 거래량이 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배경은 뭘까. 이 대통령과 정부는 기본적으로 최근 주택 시장 상황을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최근 재건축 아파트와 서울 강남 등 고가 주택의 가격 급락은 과도하게 올랐던 가격이 자연스럽게 조정되는 과정이라는 시각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매도자가 팔릴 만한 가격을 제시하고, 매수자도 바닥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면 거래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며 "연말쯤이면 조정 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실수요자의 거래 불편은 풀어주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이 대통령이 이날 또다시 '건설사의 도덕적 책임론'을 제기한 것도 시장 정상화에 부합된다. 한 전문가는 "과도한 분양가 인상 등으로 미분양을 양산해 주택경기 침체를 불러온 부실 건설사를 퇴출시켜 시장에 팽배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면 공급자 시장도 정상화될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전면적 규제완화보다 미세조정될 듯

이 같은 정부의 인식을 감안하면 향후 주택 정책은 그동안 부동산 업계 등에서 요구해 온 전면적 규제 완화보다는 기존에 발표된 정책을 약간 조정하는 선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일단 DTI나 LTV(주택담보비율)는 손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금융건전성을 해칠 수는 없다는 것. 실제로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민간 경제전문가 대다수도 금융규제 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지난 '4·23대책'을 보완하는 카드가 최우선적으로 검토될 전망이다. 이 대책은 새 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보유한 일정 기준의 기존 주택을 구입하는 무주택 또는 1주택자에게 DTI를 초과해 대출을 지원해 주는 것.

하지만 이 대책은 지원 조건이 까다롭고 매수·매도자가 맞아떨어지기 어려워 대책 시행 한 달이 넘도록 지원 실적이 전무한 실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원 조건을 완화해 수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현재 6억원 이하로 제한된 기존 주택의 가격과 전용면적 85㎡ 이하인 면적 규정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만희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거래 활성화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분양가 상한제를 일부 완화하면 공급 확대와 시장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혀 분양가 상한제 폐지도 검토될 전망이다.

◆"양도세 감면 등 추가 대책 필요" 주장도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만으로는 효과가 나오기 어렵다며 추가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집이 팔리지 않는 사람을 위해 정부 주도의 '주택은행'(housing bank) 설립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시장 안정을 위해 토지를 비축하는 것처럼 일정 기준을 정해 선의의 실수요자가 보유한 기존 주택을 제한된 범위에서 사들여 일시적인 거래병목 현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올해 말까지 적용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대책을 연장하거나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다주택자들이 양도세 중과를 피하려고 올 하반기 매물을 대거 쏟아내면 주택 가격이 급락하고, 거래시장이 더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금자리주택의 왜곡 효과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보금자리주택은 '주변 시세보다 싸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기존 분양시장은 물론 기존 주택 거래마저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은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지구에서 공급될 민영주택의 가격을 미리 공개해 주변 시세보다 엄청나게 싼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책으로 꽉 막힌 주택 시장이 단기간에 활성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지금 시장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꽁꽁 얼어붙은 주택 구매 심리가 살아나는 것"이라며 "유럽발 금융 위기 등이 해소되고 경기 회복이 눈에 보이기 전까지는 거래 활성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DTI(Debt-to-income ·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소득 규모에 따라 대출 금액을 제한하는 제도. 예컨대 DTI가 50%라면 연봉 5000만원인 사람은 1년에 원금과 이자를 합쳐 2500만원 이내에서 갚을 수 있을 정도로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