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산행코스 | 충청도의 산 ] 두타산 (598m)-충북 진천군 초안면

홀로 높아 경치 빼어난 ‘진천의 두타산’
미선나무와 소나무숲·진천 평야·초평 저수지 등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

사는 일이 뭐 이러냐고 한탄하러 가는 길 같다. 위협과 시비가 끊이지 않는 세상, 밤새 안녕을 고하러 가는 길 같다. 양지바른 툇마루에 길게 앉아 상추쌈에 풋고추 된장에 찍어 배부르게 먹고 잔뜩 힘내어 돌아올 친정 길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무한 샘솟는 에너지의 원천, 산을 호흡하러 가는 길은 그래서 계획부터 설렌다. 바람 불고 비 오는 사월을 넘기느라 이번엔 한 달이 길었나. 산에 가자는 연통을 넣기도 전에 벗들의 독촉이 앞섰다.

충북 진천의 두타산을 두고 진천 사람들은 진천 두타산이라 부르고 증평 사람들은 증평 두타산이라 부른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두대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1961년 증평읍에서 ‘두대산’이라 고시등록한 탓이다. 이는 고시등록 할 때 기록하는 이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진천군의 자료에 의하면 두타산이란 산 명은 단군이 팽우에게 산천을 다스리게 했는데 큰 홍수로 온 산천이 물에 잠기게 되고 산 정상부만 섬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 하여 비탈질 타(陀)자를 써서 두타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은 그동안 두타산이라 표기해오다가 최근에야 행정적으로 고시된 지명인 두대산으로 바로잡는다고 한 것이 결국 잘못된 지명이 되었다.

증평에 사는 친구가 열 번도 더 추천한 두타산. 그러나 두타산의 정상이 진천군에 있는 까닭에 소재지는 진천군에 속한다. 오늘은 동잠교를 들머리로 중심봉을 지나 붕어마을을 날머리로 잡았으니 장장 15.3km를 걸어야 한다. 평소보다 일찍 출발해 초평저수지 앞 붕어마을 주차장에 차 한 대를 두고 동잠교를 지나 영수사로 이동한다. 금빛 아침 햇살이 천년고찰 영수사 뜨락에 내려앉기 시작한 시각이다.

/ 글·사진 차은량 수필가. 산문집 <꽃멀미> 발간.

주차장 옆 맑은 계류를 따라 연보랏빛 으름꽃 꽃망울들이 몸피를 불리고 있고 땅바닥에는 손톱만 한 작은 풀꽃들이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있다. 조용한 산사의 아침을 잠시 소요하다 차를 타고 되돌아 나온다. 영수사 우측의 계류 옆을 따라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나 오늘은 화신주유소(현재 폐업) 옆 도로변에서 시작되는 계단으로 오르기로 한다. 코스를 길게 정한 까닭에 가파른 영수사 길보다 그 편이 수월할 거라는 계산이다.

계단 초입의 두타산 등산안내도 옆으로 군부대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에 사격훈련이 있으니 산행 전에 군부대에 전화해 사격실시여부를 확인할 것,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 것’을 알리는 내용이다. 즉시 전화를 걸어 오늘은 사격훈련이 없음을 확인한다. 신속하고 빠른 대답이 만족스럽다. 계단 중간에는 진천봉화로타리클럽이 내 건 자연보호 현수막이 눈에 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고 자연을 훼손하면 갈 곳이 없다’라는 내용이다. 멋지다. 저대로만 실천한다면 우리 사는 곳이 곧 천국이겠다. 어떻게 하면 서로 총 겨누지 않고 자연과 조화하며 살 수 있을까. 인류의 커다란 숙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계단을 오른다.

계단이 끝나자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길가 양편에 자리 잡은 무덤들마다 키 작은 풀꽃들이 피어 있다. 할미꽃, 솜나물꽃, 양지꽃, 제비꽃, 노랑붓꽃, 각시붓꽃… 추위 속에 오래 인내하다 피어난 꽃들이기에 빛깔도 저리 짙은가. 고개를 들면 난분분 지고 있는 산벚꽃이, 분꽃나무 흰 꽃들이, 그 아래로 진달래 분홍꽃이 무장무장 진을 치고 있다. 전날까지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씨에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었건만 하룻밤 사이 숲은 춘색으로 도도하다. 자연의 경이로운 조화다.

신록의 숲을 타박타박 걷는다. 걸음을 옮기는 발끝에 경쾌한 리듬이 실린다. 들머리에서 삼십여 분 걸려 육각정자인 두타정에 닿는다. 두타정 계단에 기대앉아 밀린 숨을 몰아쉬듯 심호흡에 열중하는 권은숙씨를 따라 모두 심호흡을 한다. 숨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한 춥고 억울한 사월이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은 부드럽고 완만하다. 인근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이 지나간 후 산은 다시 우리뿐이다. 갈림길마다 이정표와 벤치가 놓여 있다. 들머리와 정상의 중간지점엔 벤치와 함께 사려 깊은 구급함도 설치되어 있다.

몸도 마음도 신록에 촉촉이 젖어 노송 숲을 걷는다. 앞서 가던 일행의 걸음이 흰 꽃 앞에 멈춘다. 세계적인 희귀식물로 알려진 미선나무다. 진천의 미선나무 자생지는 1917년 초평면 용정리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그 후 1962년 천연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으나 마구잡이 무단채취로 자취가 사라져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세간의 푸대접에 상관없이 묵묵히 개체수를 늘려온 미선나무에 진천군은 다시 사랑을 쏟아 붓기 시작해 지난해는 문백면과 초평면 일대 미선나무 자생지에 잡목벌목을 하는 등 세심한 관리를 하고 있다. 미선나무의 존재도 모르던 이들이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라는 매스컴의 발표에 마구잡이로 채취를 하여 멸종을 시킬 뻔했다.

정상 아래 전망대의 조망이 훌륭하다. 두 그루 노송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먼 산을 보고 있다. 산 저편 중심봉을 향해 말발굽처럼 휘돌아나간 두타산 주능선상의 MBC 송신탑이 작은 점처럼 건너다보인다. 해 떨어지기 전에 우리가 지나가야 할 길이다. 발 아래로 까마득한 골짜기 계류를 따라 실뱀처럼 이어진 도로는 송신탑으로 향하는 포장도로로 일반인에게는 출입이 제한된 지역이다. 그런 탓에 골짜기 양편 산자락은 꽃물결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노래가 절로 나오는 어여쁜 숲을 지나 정상을 500여m 남겨둔 지점에 다시 훌륭한 전망대가 있다. 들마루와 함께 용틀임을 하는 노송들이 어우러져 있다. 왼쪽으로 두타산 주능선이, 오른편 가깝게는 진천 읍내가 보인다. 영수사와 원남저수지, 정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안부부터 아예 진달래꽃밭이다. 누가 진달래 분홍색을 촌스럽다고 하는가. 봄산에서 만나는 진달래 분홍색보다 더 마음을 흔드는 색이 또 있을까.

598.5m의 나지막한 두타산. 그러나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저 홀로 우뚝한 산. 그런 산의 정상이 위엄을 갖추려 부러 그러는지 갑자기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고 로프가 매어져 있다. 정상 전에 잠시 부려보는 호기 같으나 정상에 올라보면 안다. 두타산 정상의 지형이 얼마나 위엄을 갖추고 있는지. 넉넉한 품으로 펼쳐진 암반지대에 석탑 2기와 삼각점, 정상석이 3개다. 정상일대에 있었다는 삼국시대 석성인 두타산성의 흔적은 오랜 풍상으로 이제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상에서 동쪽 날등길을 따라 한들한들 걷다보면 두타산 삼거리다. 두타산 정상과 증평 미암리, 붕어마을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있다. 날머리로 잡은 붕어마을은 아직 9km가 남았다. 숲에 가려 조망은 좋지 않으나 전날 비에 씻긴 푸른 하늘에 둥실 흰 구름이 흐르는 아래로 온 산이 진달래꽃밭이니 조망이 따로 필요 없다. 조망은 송신탑 삼거리를 지나 송신탑이 가까워지면서부터 트이기 시작한다. 제때 피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 가도 가도 진달래꽃 물결이 이어진다. 나물 캐는 인근 주민 두 명을 만난 외에 지나는 산객 하나 없다. 맑고 깨끗하고 조용한 봄 산의 정취에 지루한 줄 모르고 걷는다.

이윽고 하늘을 찌르는 MBC송신탑이 보인다. 위용이 대단하다. 두타산은 주능선이 진천군과 증평군의 군계로 나뉘는 탓에 이곳의 등산안내도는 증평군 관할지역만 안내되어 있다. 남쪽 붕어마을로 가는 길 표시는 중간에 끊겨 있다. 훌륭하고 멋진 산에 어울리지 않는 인색한 안내도다. 헬기장을 지나 통신부대 철조망 옆길을 따라가면 화물운반용 모노레일이 보이고 모노레일 건너편으로 울긋불긋 시그널이 달려 있다. 모노레일 아래를 기어 진천 쪽 두타산으로 접어든다. 

남쪽 맞은 편 멀리 하늘과 땅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한남금북정맥이 말처럼 달리고 있고 그 앞으로 증평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해 다리를 쉰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공병대 삼거리와 사격장 삼거리, 붕어마을 삼거리,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붕어마을을 향해 걷다가 보타사 삼거리를 지난다. 증평 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마지막 갈림길이다.

곧 전망대에 닿는다. 앞으로는 정상보다 더 정상 같은 두타산 중심봉의 자태가 황홀하고 오른편으로 초평저수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시선을 던져 영수사 쪽에서부터 지나온 길을 더듬어본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넘고 넘어 걸어 온 길, 시간은 오후 4시가 훌쩍 넘어 있다. 철제 계단을 올라 중심봉에 닿는다. 암릉지대인 중심봉은 동서남북 사방 조망이 트여 있고 여기저기 잘 쌓은 돌탑들이 풍광을 더해준다. 중심봉에서 붕어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삼형제바위를 지나자 산행이 끝나가는 것이 아쉽다는 듯 길은 다시 진달래숲으로 이어지고 일행은 이젠 감탄사도 바닥이 났는지 말없이 분홍 꽃길을 걷는다. 또 한 차례 멋진 전망대가 나타나 발목을 잡는다. 로프가 매어진 급경사 길이 계단으로 이어지고 눈앞에는 초평저수지에 발목을 담근 해 그림자가 길다. 계단길이 끝나는 곳에서 한국통신중계소로 이어지는 포장도로와 만난다. 붕어마을까지는 2km가 남아 있다. 저녁을 먹기로 한 붕어찜식당으로 픽업을 요청하고 산벚꽃 그늘에 앉아 차를 기다린다.

산행길잡이

○ 영수사~정상~두타정~동잠교 옆 화신주유소 <동잠교 원점회귀산행, 3시간 소요>
○ 증평 미암리~정상~영수사 <3시간 소요>
○ 화신주유소 혹은 영수사~정상~ 미암재~송신탑~중심봉~붕어마을 <7시간 소요>

산행가이드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짧은 산행으로는 진천의 영수사 길로 올라 정상을 거쳐 동잠교(화신주유소 옆 계단길)로 내려오면 된다. 증평 쪽에서는 미암리로 올라 중심봉을 거쳐 보타사 삼거리로 하산한다. 영수사에서 두타산 주능선을 타고 중심봉을 거쳐 붕어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걸음의 속도에 따라 6시간에서 8시간 정도 소요된다. 두타산의 정취를 제대로 즐기려면 영수사 - 붕어마을 코스를 추천한다. 영수사와 붕어마을의 거리가 멀어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동수단을 미리 고려해 두어야 한다. 붕어마을로 하산하여 붕어찜을 먹을 계획이라면 식당상호를 미리 알아두어 픽업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중에는 인근 군부대에 사격훈련이 있는지 문의 후 산행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사격훈련실시여부 문의는 043-532-6797로 하고 산불예방통제기간 문의는 진천군청 산림경영과 043-539-3583으로 한다. 이 기간에도 비가 온 이튿날은 입산이 허가된다.

볼거리

영수사에는 충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괘불탱화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괘불로 알려진 영산회상도 괘불탱화는 매년 4월 초파일에만 공개된다. 영수사에서 치는 종소리는 두타모종이라 하여 진천군 상산8경 중 하나로 친다. 

두타산 특산물로는 유명한 상산자석벼루가 있다. 두타산 산행을 하다보면 자줏빛 돌을 수없이 보게 되는데 그 자줏빛 돌로 만든 명품벼루이다. 천년을 이어온 진천의 농다리의 돌도 이 상산자석이다. 상산자석으로 만든 벼루는 먹물이 마르지 않고 곱게 갈려 조선 선비들이 즐겨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교통

○ 대중교통

청주행 고속버스, 직행버스를 이용하여 청주에서 청주~진천간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50분 소요되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진천~용정리(초평면) 증평행 직행버스 이용한다. 10분 소요되며 1일 6회 운행한다.

○ 승용차 

경부, 중부고속도로를 이용 진천IC 진출 후 진천 방면~성석 사거리(좌회전)~삼덕~중석~ 용정 21번 국도, 34번 국도를 이용한다.

숙식

초평면의 붕어마을은 붕어찜과 어죽 등 민물고기 전문음식점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붕어찜 전문음식점으로 30년 전통의 미련집(043-532-6179)과 충북 향토음식 기능 보유자인 박경자씨가 운영하는 송애집(043-532-6228)을 추천한다. 붕어마을 붕어찜은 시레기를 듬뿍 넣은 붕어찜과 두타산에서 채취한 산나물 등 유기농반찬이 푸짐하게 딸려 나온다. 진천관광호텔(043-533-0010)

초평저수지로 유명한 초평면에는 농촌민박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진천군청 홈페이지(http://jincheon.go.kr)에 접속해 두타산을 검색하면 붕어마을 업소현황과 농촌민박 정보가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