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같은 아름다움… 디지털로 그린 詩

미국 출신의 설치 작가인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의 국내 첫 개인전이 리안갤러리 대구와 서울 전시장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1958년 미국 덴버에서 태어난 스타인캠프는 1980년대부터 영상을 이용한 설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3년 제8회 이스탄불 비엔날레에서 발표한 작품 〈Eye Catching〉을 통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타인캠프는 컴퓨터로 3D 영상을 제작해 '디지털로 자연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그래픽을 통해 자연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자연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전시 중인 〈라푼젤〉 같은 작품을 바라보면 흔들리는 무수한 꽃이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 같다. 바람에 흔들리듯 부드럽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꽃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꽃의 흔들림이 잠깐 정지하면서 순간적으로 생명의 유한함을 일깨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한 스타인캠프는 "내 작품은 건축 속의 실재 공간과 컴퓨터가 만들어낸 공간이 만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면서 "특히 빛에 반사된 자연을 공기의 흐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쪽 벽에 쏘는 빛을 통해 꽃과 나무는 작가의 의도대로 바람에 흔들리거나 천장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작가가 디지털로 그린 시(詩)란 표현이 떠오른다. 자연을 그렸다고 하지만 화면 뒤에 숨은 뜻은 부드럽지만은 않다. 스타인캠프는 네 계절에 따라 나뭇잎이 변하게 제작한 작품 〈Fly to Mars〉에 대해 "국민이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갈 수 있게 하겠다는 부시(Bush)의 거짓말을 빗댄 것"이라고 말했다. 벽에 쏘여진 아름다운 형상이 거짓말처럼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는 신기루 같음을 암시한 것이다. 전시는 7월 3일까지 이어진다. 서울 청담동 전시장 (02) 512-2243. 대구 대봉2동 전시장 (053) 424-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