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지상낙원? 北의 화장을 벗기면…

사진작가 백승우가 서울 서소문동 일우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블로 업(Blow up)' '유토피아(Utopia)' 등 북한을 소재로 한 사진 35점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을) 확대하다'라는 뜻을 담은 '블로 업' 연작은 지난 2001년 작가가 북한에서 한 달간 머물며 촬영한 사진들의 일부를 확대한 것이다. 날마다 같은 시각 평양 고려호텔 앞에서 조깅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듯 보이는 여자, 손님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점을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쳐다보며 지나가는 행인들, 영어 사용을 금지한 사회라면서 영문 상표가 또렷이 새겨진 키보드를 연주하는 공개석상 등을 담았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그로부터 5~6년 뒤 작가가 필름을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북한 사진을 찍고 싶어서 남북교류 행사단의 일원이 되어 어렵게 평양을 방문했지만 정작 제가 원하는 사진은 하나도 남길 수 없었어요. 감시원들이 매일 필름을 압수해 자기들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은 잘라낸 뒤 돌려줬기 때문이죠. 그런데 필름들 귀퉁이에 그들이 숨기고 싶어했던 진짜 북한의 모습이 담겨 있었어요. 그 부분들만 확대하고 보니 북한이 미처 꾸미지 못한 진실의 조각이 낱낱이 드러났죠."

'유토피아' 연작은 지상낙원을 자처하는 북한이 선전 효과를 노려 연출한 사진을 작가가 더욱 과장된 이미지로 변형한 것이다. 사진에 담긴 북한은 영화 포스터처럼 빨강·노랑·파랑 등 원색을 배경으로 한 도시에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일본의 한 고서점에서 북한의 대외선전용 사진과 자료들이 헐값에 팔리는 것을 보고,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을 더욱 과장해서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10층짜리 건물을 20층으로 높이고, 폭을 늘리고, 2개 이상의 건물을 한 건물로 보이게 겹쳤다. 그는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북한이 철저히 위장한 현실의 이면을 파헤치고, 그 결과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백씨가 한진그룹 일우재단이 제정한 제1회 일우사진상에서 '올해의 주목할만한 작가'로 선정된 수상기념전으로, 심사위원들로부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특이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주제의식이 독창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02)753-6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