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개봉작 다이어리'] 인생이 어디 짐작대로 흘러가던가

간만에 백화점에 갔다. 쇼핑을 할 생각은 아니었고, 영화 시간이 남아서였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줄을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그나마 사람이 적은 부인복 코너 쪽을 도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새삼스레 놀랐다. 빨강, 파란, 노란색 계열의 강렬한 색상 하며, 부들부들한 레이스에 섬세한 자수, 보석까지…. 촌스럽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찌나 디테일이 많은지 가격표를 뒤집어 보는 게 겁이 날 정도였다. 하긴 누군가 말했던가. 화려한 뱀피나 악어가죽이 좋아지는 나이가 되면 바야흐로 중년이라고.

뜬금없이 부인복 코너를 돌다가, 시간을 맞춰 본 영화는 '여대생 기숙사'였다. 역시 여름에는 '여고괴담'처럼 예쁜 언니들이 떼로 나오는 공포영화가 제격 아닌가.

작정하고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 장난을 치다가 어이없이 사람을 죽인다는 설정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슬래셔 무비(난도질 영화)의 영화적 문법이다. 감추려다 보니 자꾸 죽이게 되는 황당한 설정은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나 '베리 배드 씽' 같은 영화에서도 차용됐다. '여대생 기숙사'에선 폐쇄된 기숙사 공간 안에서 광란의 졸업파티를 하던 여섯 명의 친구들의 계획이 어긋나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때부터 영화 속에선 난도질과 비명 행진이 이어진다. 미끈하게 빠진 여대생들의 화끈한 몸과 하이 톤의 비명이 창궐한다. 비밀은 새어나가라고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런 영화에선 줄줄 새나간 비밀이 서로의 뒤통수를 향해 칼처럼 날아든다. 마치 여름에 보는 '수영장 특집'이나 '바캉스 기사'처럼 너무 빤하지만, 더운 계절에 기대할 수 있는 여름 특선의 느낌이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은 확실히 즐거웠다. 천 쪼가리 하나만 걸쳐도 아름다울 수 있는 나이이니, 주렁주렁 레이스에 자수를 놓은 화려한 부인복이 서글퍼질 지경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영화에 모두 같은 제목을 단다면, '짐작과는 다른 일' 정도의 소제목이 붙을 텐데, 생각해보니 요즘 주변에서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다. 그 중 하나는 한국의 8강 탈락이었고, 더 안타까웠던 건 우루과이전 후반에 투입돼 월드컵 무대에 뛰게 된 이동국의 인터뷰 기사였다.

"비가 와 그라운드가 젖어 있어 땅볼로 강하게 차려고 했다. 허무하다." 한국의 마지막 기회였던 이동국의 슛은 골망을 가르는 대신, 맥없이 골키퍼 앞으로 굴러갔다. 이 일로 엉뚱하게 '동국'대학교 갤러리가 네티즌들의 공격으로 마비됐단다. 그가 12년간 꿈꿔왔던 월드컵은 분명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인생은 짐작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여대생 기숙사
감독: 스튜어트 헨들러/ 개봉: 6월 24일/ 관객 수: 4만400명(27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