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시네마 오디세이 - '포화 속으로'
입력 : 2010.06.30 14:45
| 껍질만 남은, 시대착오적인 전쟁영화 |
'포화 속으로'(감독 이재한)는 113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다. 막대한 물량을 자랑하듯, 2시간 러닝타임 중 전투 장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오프닝부터 총알이 날아다니고, 피가 튀고, 군인들이 죽어나가는 치열한 전투신이다. 많은 전쟁영화가 사용한 방식이다.
영화는 6ㆍ25전쟁 당시 포항전투에 투입된 학도명 71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 대위(김승우)는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강석대는 학교에 71명의 학도병을 남겨두고 떠난다. 소년원에 가는 대신 학도병에 자원한 구갑조(권상우)도 그중 한 명이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경험이 있는 오장범(최승현)이 중대장으로 임명된다. 박무량(차승원)이 이끄는 북한 766부대는 낙동강 대신 포항으로 진격한다. 총을 딱 한 발 쏴보는 것으로 훈련을 마친 학도병들은 북한군 정규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포화 속으로'는 몇 개의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인물들이 새롭다. 한국영화에서 기억하지 않았던 학도병을 스크린으로 불러낸다. 상업영화로서 김승우, 차승원, 권상우, 최승현 등 미남스타 네 명이 동시에 출연한 것도 관심을 끌 수 있다. 학도병들이 적의 탱크에 폭탄을 안고 뛰어드는 '자살테러'나 북한군 군복처럼, 고증을 거친 장면은 사실적이다. 서정적인 화면으로 리듬에 변화를 주려고 애쓴 흔적도 엿보인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선악 이분법을 탈피한 캐릭터도 눈에 띈다.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량은 학도병들을 "쟤들이 군인으로 보이느냐. 조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다"라고 평가한다. 그가 동생 사진과 김일성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을 연속해서 배치, 북한군 역시 고뇌하는 인간이자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은 단편적이고 사소하다. 영화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기에는 턱없이 빈약하다. 오히려 뻔하고, 시대착오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과 전개로 인해 영화는 흡인력을 상실하고 만다.
오장범과 북한 소년병은 죽음의 순간에 어머니를 찾고, 티격태격하던 오장범과 구갑조는 최후의 순간에 화해하고, 네 명의 주인공은 약속이나 한 듯 학교 옥상에서 만난다, 여기까지는 익숙함이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으로 이해하자.
휴머니즘은 낯뜨겁다. 과유불급이다. 강석대는 전우들이 적의 포탄에 무참히 죽어가는 낙동강 전선을 포기하고 학도병들을 지원하자고 주장한다. 반대로 사단장은 방관자처럼 행동한다. 강석대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역사적 사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에게는 미군이 우는 아이에게 사탕 주듯이 바주카포를 내주는 행동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리얼리티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오장범과 구갑조는 수십 발의 총알을 맞고도 죽지 않고 기어이 적을 쓰러뜨린다. 80년대 홍콩 액션느와르의 주인공 주윤발이 부활한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시계를 20, 30년 전으로 돌리는 것만은 참아야 했다. 북한군이 장예모 영화의 한 장면처럼 깃발을 높이 들고 진군하고, 박무량은 마피아 보스처럼 행동하고, 학도병 2명이 맨손으로 무장한 북한군 트럭을 탈취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장면들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런 걸 영화적 설정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
무엇보다 왜 감동 실화를 '재구성'한 것인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모호하다. 반공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 반전영화인가, 포화 속의 인간애를 그린 것인가, 학도병이라는 숨은 전쟁영웅 이야기인가. 제작 의도는 그랬을지 모른다. 아니면 6ㆍ25를 재해석한 것인가. 감독은 이 모든 내용을 담으려고 욕심낸 것으로 보인다.
사소한 듯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옥에 티도 많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 8월 초다. 그런데 북한군들은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가로질러 진군해 온다. 산자락 갈대는 노랗게 변해 있다. 8월이면 푸른 벼가 자라고, 푸른 갈대가 넘실거려야 할 때다.
'포화 속으로'는 전쟁영화의 필수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다. 전투신, 휴머니즘, 전우애, 전쟁의 참혹함, 희미한 멜로....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반대로 포인트가 없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담으려다 아무 것도 담지 못한, 나비는 날아가고 껍질만 남은 형국이 됐다. 아쉽다.
< dada@sportschosun.com>
영화는 6ㆍ25전쟁 당시 포항전투에 투입된 학도명 71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 대위(김승우)는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강석대는 학교에 71명의 학도병을 남겨두고 떠난다. 소년원에 가는 대신 학도병에 자원한 구갑조(권상우)도 그중 한 명이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경험이 있는 오장범(최승현)이 중대장으로 임명된다. 박무량(차승원)이 이끄는 북한 766부대는 낙동강 대신 포항으로 진격한다. 총을 딱 한 발 쏴보는 것으로 훈련을 마친 학도병들은 북한군 정규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포화 속으로'는 몇 개의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인물들이 새롭다. 한국영화에서 기억하지 않았던 학도병을 스크린으로 불러낸다. 상업영화로서 김승우, 차승원, 권상우, 최승현 등 미남스타 네 명이 동시에 출연한 것도 관심을 끌 수 있다. 학도병들이 적의 탱크에 폭탄을 안고 뛰어드는 '자살테러'나 북한군 군복처럼, 고증을 거친 장면은 사실적이다. 서정적인 화면으로 리듬에 변화를 주려고 애쓴 흔적도 엿보인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선악 이분법을 탈피한 캐릭터도 눈에 띈다.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량은 학도병들을 "쟤들이 군인으로 보이느냐. 조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다"라고 평가한다. 그가 동생 사진과 김일성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을 연속해서 배치, 북한군 역시 고뇌하는 인간이자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은 단편적이고 사소하다. 영화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기에는 턱없이 빈약하다. 오히려 뻔하고, 시대착오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과 전개로 인해 영화는 흡인력을 상실하고 만다.
오장범과 북한 소년병은 죽음의 순간에 어머니를 찾고, 티격태격하던 오장범과 구갑조는 최후의 순간에 화해하고, 네 명의 주인공은 약속이나 한 듯 학교 옥상에서 만난다, 여기까지는 익숙함이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으로 이해하자.
휴머니즘은 낯뜨겁다. 과유불급이다. 강석대는 전우들이 적의 포탄에 무참히 죽어가는 낙동강 전선을 포기하고 학도병들을 지원하자고 주장한다. 반대로 사단장은 방관자처럼 행동한다. 강석대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역사적 사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에게는 미군이 우는 아이에게 사탕 주듯이 바주카포를 내주는 행동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리얼리티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오장범과 구갑조는 수십 발의 총알을 맞고도 죽지 않고 기어이 적을 쓰러뜨린다. 80년대 홍콩 액션느와르의 주인공 주윤발이 부활한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시계를 20, 30년 전으로 돌리는 것만은 참아야 했다. 북한군이 장예모 영화의 한 장면처럼 깃발을 높이 들고 진군하고, 박무량은 마피아 보스처럼 행동하고, 학도병 2명이 맨손으로 무장한 북한군 트럭을 탈취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장면들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런 걸 영화적 설정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
무엇보다 왜 감동 실화를 '재구성'한 것인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모호하다. 반공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 반전영화인가, 포화 속의 인간애를 그린 것인가, 학도병이라는 숨은 전쟁영웅 이야기인가. 제작 의도는 그랬을지 모른다. 아니면 6ㆍ25를 재해석한 것인가. 감독은 이 모든 내용을 담으려고 욕심낸 것으로 보인다.
사소한 듯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옥에 티도 많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 8월 초다. 그런데 북한군들은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가로질러 진군해 온다. 산자락 갈대는 노랗게 변해 있다. 8월이면 푸른 벼가 자라고, 푸른 갈대가 넘실거려야 할 때다.
'포화 속으로'는 전쟁영화의 필수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다. 전투신, 휴머니즘, 전우애, 전쟁의 참혹함, 희미한 멜로....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반대로 포인트가 없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담으려다 아무 것도 담지 못한, 나비는 날아가고 껍질만 남은 형국이 됐다. 아쉽다.
< 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