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영화제 위해 영화 찍냐고요? 그게 독립영화 배급 창구죠"

장편 데뷔작 '내 안에 우는 바람(1997)'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시킨 것을 비롯, 내놓는 작품마다 유수 해외 영화제에 출품시킨 전수일 감독이 7번째 영화 '영도다리(1일 개봉)'를 내놓았다. 이 작품 역시 작년 스페인 산세바스찬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다. 부산에 살면서 서울(또는 주류영화)과는 판이하게 다른 감성을 묘사해온 이 독립영화 감독을 지난달 3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작업이 끝나자마자 '영도다리'에 착수했다면서요. 이런 강행군의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영화를 산업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투자와 캐스팅, 배급까지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그보다 영화 창작 욕구가 더 강해요. 그러니까 일단 준비를 시작합니다. 멈출 수가 없어요.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끝까지 가다보면 어떤 길이 보입니다."

'영도다리'는 원조교제를 하던 10대가 아이를 낳아 입양시킨 뒤, 문득 아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박하선)은 자신이 버린 아이를 찾아 프랑스까지 간다.

―입양 소재 영화는 처음이죠.

"제가 1989년 프랑스로 유학 갈 때 그곳으로 입양되는 쌍둥이를 데려다 줬습니다. 그때 파리 공항에서 만난 양부모 앞에서 아이들이 제 손목을 꼭 붙잡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누군가에게 인계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 줄곧 입양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목도 그렇지만, 영화 대부분을 부산 영도대교 근처에서 찍었던데요.

"영도다리엔 1970년대 정서가 남아있습니다. 방치돼 있다고 할까요. 황량하고 소외돼있는 그 공간이 영화 속 주인공이 아이를 보낸 뒤 갖는 상실감과 정서적으로 맞는다고 봤어요. 이제 옛 영도다리 대신 새 다리를 세운다니, 부산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 같은 것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폭력이 등장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저학년에게 돈을 뜯고 고교생들이 취객을 폭행하며, 여고생들이 다른 여고생을 무릎 꿇리고 때린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볼 수 있지만 사회가 애써 냉담한 모습들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입양이나 10대 미혼모도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사회적으로 무관심의 영역인 것들을 상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프랑스의 샤모니까지 가서 찍었던데요.

"부산과는 아주 다른, 무척 멀리 느껴지는 나라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알프스에 눈이 하얗게 덮여 있는 그 먼 나라까지 소녀가 찾아갔다는 것, 그곳에서 아기 울음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여줘야 했죠. 그래서 제작비가 빠듯했지만 굉장히 중요한 로케이션이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제작비 1억5000만원)만의 사연도 많다. 영도 앞바다에 빠지는 취객 역할은 영도 주민 중에서 캐스팅했고, 주인공 방에 필요했던 커튼은 스태프 숙소에 있던 것을 옮겨 달고 찍었다.

―각본을 쓸 때 원칙 같은 것이 있습니까.

"주인공에게 너무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인위적인 드라마가 되는 걸 피하는 거죠. 빠른 리듬이나 극적인 순간, 강한 충격을 피하고 인물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려고 합니다."

―해외 영화제 출품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해외 영화제를 위해 영화 찍는다는 말도 하는 모양인데, 완전히 왜곡된 시선입니다. 저에게 해외 영화제는 영화를 배급하는 길을 찾는 창구입니다. 독립영화는 기존 배급 루트로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해외 영화제에 소개되면 국내 배급이 열리기도 하죠. 극장 확보하기 어려운 독립영화엔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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