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구리가 돌아왔다"

최근 삼성전자가 출시한 스마트폰 갤럭시S. 두께가 1㎝가 안 될 정도로 얇고 가볍다. 휴대전화가 이처럼 얇아질 수 있는 것은 모양이 자유롭게 변하는 연성 회로기판(전자부품을 설치하는 보드판)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연성 회로기판의 주 재료가 바로 구리(동·銅)이다. 구리판 아래에 특수 플라스틱을 밀착시켜 만든다.

부엌 전문기업인 한샘이 최근 스위스에서 수입해 들여온 구리 수도꼭지의 1개 가격은 무려 120만원. 일반 아연·크롬 도금 제품 가격의 거의 20배나 된다. 회사 관계자는 "고급스러운 느낌에다가 항균 기능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고급 단독주택 수요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해 온 금속인 동(銅·구리)이 정보통신(IT)·친환경 시대를 맞아 주목받고 있다. 전도성(傳導性)과 항균성(抗菌性)이 뛰어나 휴대전화·냉장고 등 전자제품부터 인테리어 소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쓰임새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균 박멸! 병원서 각광받는 동(銅)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종합병원 '아스클레피오스 클리닉 반즈베크(Asklepios Clinic in Wandsbek). 이곳 병원에서는 병실 문 손잡이 등 환자의 손이 닿는 곳은 모두 구리로 만들었다. 일본 기타사토 대학병원도 최근 의사와 간호사가 사용하는 볼펜 손잡이를 구리 소재로 교체했다. 이유는 구리의 항균성 때문. 지난해 의학전문 저널인 호스피탈 인펙션(Hospital Infection)에 버밍햄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변기와 수도꼭지, 병실 문 손잡이 등을 구리로 만든 경우가 다른 소재로 만든 경우보다 세균을 90% 정도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항균성 때문에 구리는 인테리어 자재로도 널리 쓰인다. 한샘은 싱크대나 붙박이장 손잡이에 동을 도금한 제품을 내놨다. 한샘 관계자는 "동으로 가구를 만들기엔 가격이 비싸 지금은 도금처리만 하는 정도"라며 "색도 예쁘고 녹이 슬지 않아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단독주택 소유자들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동을 쓰고 있다. 동 생산업체 이구산업 관계자는 "동은 노란색이나 빨간색을 구현해 색감이 예쁘고 세균도 막아 자가 주택 가진 사람들이 동 제품을 DIY(가정용품의 제작이나 장식을 직접하는 것)로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IT산업 필수 재료로 주목받아

구리 수요는 IT 산업이 발달하면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가장 수요가 많은 곳은 케이블. 통신망이 발달하면서 전력 케이블과 일반 통신 케이블뿐 아니라 최근 신(新)사업분야로 부상한 해저 케이블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LS전선 조인묵 부장은 "도시화·정보화가 진행될수록 동이 들어가는 케이블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며 "알루미늄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전도율이 낮아 효과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TV 등 디지털 제품의 필수 부품 중 하나인 회로기판에도 동은 널리 쓰인다. 전기를 잘 통하게 하기 때문에 오작동의 우려가 적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해도 부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전자제품에 구리가 없으면 작동할 수가 없다"며 "특히 회로기판에서 쓰이는 동은 가격 대비 효율이 좋아서 대체품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기는 산업용 구리 잉크 개발을 신성장 동력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구리를 잉크로 사용해 기판·필름·직물·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대상에 바로 인쇄하는 방식으로, 회로기판을 훨씬 효율적으로 가공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 같은 수요 증가로 국제 구리 가격은 계속 오름세다. 지난달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3개월물 가격은 2.8% 올랐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도 구리 7월 인도분 가격이 3% 상승했다. 재고량도 계속 줄어들어 지난달 1825t이 감소해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황운석 인하대 교수는 "구리는 전기 전도성과 열전도성이 일반 금속 중에는 제일 우수하다"며 "산업이 발전할수록 수요와 용도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