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제, 천적 이세돌 꺾고 '세계 4관왕'

이세돌(27)이 쿵제(孔杰·28)에 분패,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중 랭킹 1위 간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제23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서 쿵제가 269수 만에 백으로 12집 반을 이겼다. 이세돌은 아쉬움 탓인지 돌을 못 거둔 채 마지막 반패(半覇)까지 메우고 집 차를 확인했다. 4관왕에 오른 쿵제는 우승상금 1500만엔(약 2억원)을 챙겼다. 동시에 벌어진 3·4위전에선 추쥔(邱峻)이 같은 중국의 퍄오원야오(朴文堯)를 누르고 내년도 자동출전권(시드)을 획득했다.

안타까운 일전이었다. 이세돌은 초반 상변 백에 무리한 공격을 퍼붓다가 반격을 받으면서 일찌감치 열세에 빠졌다. 중앙에서 하변에 걸쳐 쫓기던 흑 대마가 간신히 패(覇)로 생환하는 동안 그 대가로 상변이 파괴됐다. 이후 흑은 우중앙 백 대마를 일직선으로 공격하며 승부를 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인터넷 해설을 맡았던 송태곤 九단은 "쿵제가 초반에 우세를 잡은 뒤 놀랍도록 정확하게 끝까지 승리를 지켜냈다"고 평했다.

이날 바둑은 한·중 양국 현역 1인자 대결이란 점 외에도 둘 모두 현역 세계 타이틀 보유자란 점, 무서운 기세로 질주하던 양대 스타의 맞격돌이란 점 등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 결과가 주목됐다. 쿵제는 지난해 6월 제21회 TV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을 신호탄으로 14회 삼성화재배, 14회 LG배, 최근의 제22회 TV아시아선수권대회에 이어 이번까지 결승에 오른 5개 대회를 모조리 우승하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이세돌은 작년 하반기 휴직을 거쳐 올해 초 복귀한 직후 제2회 비씨카드배를 제패하는 등 쾌조의 페이스를 보이다 제동이 걸렸다. 이세돌은 한때 세계 타이틀 4관왕에 오르는 등 국제 무대에서 통산 13회 우승했으며 준우승은 이번이 5번째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세돌이 그 동안 쿵제에게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 왔다는 점. 이세돌은 쿵제를 상대로 공식전에서만 6승3패, 중국 리그 등을 포함할 경우 13승3패로 격차를 벌려 왔었다. 한때는 9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가장 마지막 대결이었던 지난 2월 제2회 비씨카드배 때도 절대 열세였던 이세돌이 역전승하자 "쿵제는 주눅이 들어 영원히 이세돌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란 말까지 돌았었다.

이날 후지쓰배 결승 결과 세계 타이틀 분포는 중국이 4관왕 쿵제 외에 구리(古力)가 도요타덴소배를, 창하오(常昊)가 춘란배를 보유하는 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이세돌 1개, 최철한 1개(잉씨배)뿐으로 단체전인 농심배를 포함하더라도 3대6의 절대 열세에 놓이게 됐다.

'한국 바둑의 보루(堡壘)'로 까지 불렸던 후지쓰배가 다시 중국에 넘어갔다는 사실도 안타까운 일. 한국은 조훈현과 이세돌이 각각 세 차례, 이창호 유창혁 박영훈이 각 두 차례 우승했고 박정상과 전기(前期) 챔프 강동윤에 이르기까지 무려 7명이 총 14회의 최다 우승을 이 대회에서 장식해 왔다. 주최국 일본은 초창기 때의 우세로 6차례 우승했고, 중국은 이번 쿵제를 통해 세 번째 우승자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