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개봉작 다이어리] 이런 어려운 영화를 왜 보냐 물으신다면…

'아바타'를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영화가 영화 본연의 예술적인 감흥 이외에 극장 안에서의 물리적 체험이라는 새로운 형태적 국면을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캐러멜 팝콘과 녹인 치즈를 얹은 나초를 사 먹는 것 이외에, 좌석이 움직이거나 향기가 뿜어져 나오거나 하는 기묘한 세상인 것이다. 다소 바보처럼 보이는 어질어질한 3D 안경을 쓰고, 3시간가량의 시간을 참으며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나는 어떤 영화는 특정 극장에 가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되었다. CGV나 메가박스용 영화가 있다면, 씨네큐브나 하이퍼텍나다에 어울리는 영화도 있다는 것이다.

'하얀리본'은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작품으로, 2009년 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황금종려상이란 타이틀이 붙는 순간, 이 영화가 친절하지 않으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따로 검색해 보지 않아도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별점 4개나 5개를 주었으리란 것도 그렇다. 물론 마지막 엔딩이 올라가는 순간, 어쩐지 다시 한 번 리플레이해서 영화를 한 번 더 봐야 하는 건 아닌가란 답답함 이외에 자신의 영화해석 능력을 의심해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 영화가 '흑백영화'라는 사실에선 빛나는 황금종려상 위에 방점을 찍는 격이다.

'하얀리본'은 '서스펜스 미스터리' 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1913년,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평화로워 보이는 한 마을에서 의사가 낙마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그리고 마을에 사고사와 방화, 장애우의 눈을 도려내는 잔인한 사건들이 연달아 이어진다. 누가, 왜 그랬을까? 영화는 사람들이 당연히 궁금해할 질문과 표면들을 피하고, 연이은 사건 사고의 징후를 포착해낸다. 당연히 경찰관이나 탐정이 나오는 할리우드식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리고, 눈을 비비며 자막의 글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될 것이다. 수음을 했다는 이유로 손목을 밧줄로 묶이거나, 아이들이 잘못을 할 때마다 주홍글씨 같은 하얀리본을 매달게 하는 청교도적인 집안 분위기, 복수조차 사치가 돼버리고만 비루한 소작농의 삶, 마을의 다양한 사람들과 생의 이면에 감추어진 악의는 스크린 속을 감옥처럼 답답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극장을 나와 하늘을 보았을 때, 마음이 불편하고 섬뜩하며, 소화불량 증세를 보이는 이 영화는 극장에서의 유쾌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예의, 허위, 체면처럼 인생에 덧대진 '당의정'을 벗기고, 인간 본성의 어둠을 '영화적'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하얀리본'은 당장이라도 뛰어가 봐야 할 영화다. 알다시피 지금 뛰어가야 하는 건, 이런 영화일수록 서둘러 내리기 때문이다.


하얀 리본
감독: 미하엘 하네케/ 개봉: 7월 1일/ 관객수: 1900명(4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