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

서양화가 황주리는 '수집광(狂)'이라고 불릴 만큼 수집을 즐긴다. 초등학교 때부터 모은 우표가 1000장이 넘었고, 중학교 때부터 수집한 안경도 1000개쯤 된다. 여기저기서 모은 돌이 500개가 넘고,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까지 유치원생들이 앉는 작은 의자를 모아왔다. 황주리는 "이런 나를 가만히 분석해보니 결국 '이미지 수집가'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수집은 물건을 모으는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이자, 그 물건이 만들어진 사회와 자연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안경은 인간의 문명을, 돌은 자연을 상징하는 오브제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강남)에서 열리고 있는 황주리의 개인전 〈꽃보다 사람〉은 이미지 수집가로서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는 2008년 개인전 이후 작업한 작품들과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 80여점이 등장한다.

잘 알려진 〈식물학〉은 꽃 속에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넣은 작품이다. 서로 안은 채 걷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엎드려 우는 여인, 사진 찍는 남자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이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담겨 있다. 작가는 사랑과 생명을 상징하는 꽃 속에 인간을 그려넣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민을 보여준다. 작가가 "죽을 생각을 했던 사람이 내 그림을 보고 살고 싶은 의지가 생겼으면 한다"고 한 것처럼 황주리의 화려한 색상은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일깨운다.

작품 〈의자에 관한 명상〉은 그동안 모은 유치원 의자들 위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작가는 실생활에 사용됐던 의자 위에 인물을 그려넣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진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회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직접 찍은 사진 이미지를 배경으로 그 위에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넣었다. 작가는 "종군 사진기자가 근사하게 보여 중학교 때 사진반에 들어갔다"며 "사진은 이미지를 자유롭게 수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여행에서 마주친 뒷골목이나 초등학교 수돗가에서 발견한 수도꼭지 등을 찍어 이미지를 그려넣었다. 사진은 찍는 순간을 영원히 포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는 11일까지 이어진다. (02)519-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