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시네마 오디세이 - '파괴된 사나이'
입력 : 2010.07.08 14:10
| 익숙한 얘기-맥빠진 전개…지루한 스릴러 |
목사가 사자후를 토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 그의 설교 사이로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유괴되고, 목사가 괴로워하는 장면이 삽입된다. 목사의 딸이 유괴된 것이다. 다음 순간, 목사는 걸쭉한 욕설을 퍼부으며 교회를 나선다. 신을 거부한 것이다. 다소 충격적인 시작이다.
'파괴된 사나이'(감독 우민호)는 유괴가 발단이다. 제목은 일차적으로 목사를 지칭한다. 영화는 사건의 결과를 보여주고 시작한다. 목사가 딸의 유괴로 인해 종교적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그의 영혼이 파괴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목사의 종교적 고민을 아예 생략한다. 대담한 전략이다. 관객의 통념을 뛰어넘는 무엇을 준비한 것일까.
8년 후. 목사는 의료기기 수입상이 되어 있다. 아내(박민경)는 여전히 전단지를 뿌리며 거리를 헤맨다. 목사였으나 이제 신을 버린 주영수(김명민)는 딸을 포기한 상태다. 그 주영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유괴범 최병철(엄기준)이다. 딸이 살아있다고 말한다. 물론 돈을 요구한다. 주영수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피폐한 상태다. 직원 월급도 못 주고, 아내는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다.
유괴는 한국영화에서 익숙한 소재가 됐다. 최근 몇 년간 어린이 유괴를 다룬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됐다. 유괴라는 비인간적 범죄를 통해 신과 용서에 대한 종교적 질문을 던지거나('밀양'), 모성애 혹은 부성애를 부각시키거나('세븐 데이즈', '그놈 목소리'), 빗나간 양심과 복수로 인한 비극의 사슬('용서는 없다')을 다양하게 보여줬다.
'파괴된 사나이'는 몇 가지 눈에 띄는 장점이 있다. 주영수가 딸을 구하기 위해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범인을 일찌감치 노출시킨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주영수가 오프닝에서 목사 가운을 벗어던진 것과 유사하다. 상황은 이제 간결해졌다. 주영수와 최병철만 남는다.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범인이 왜 그랬는가에 초점이 모아진다.
감독은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예술을 끌어들인다. 최병철은 클래식 애호가다. 수억 원이 넘는 초고가 앰프를 사들이는 게 취미다. 그가 아이들을 유괴하는 이유는, 더 좋은 앰프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유괴범이 고상한 취미 생활을 하려고 살인과 유괴를 취미처럼 저지른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묵직해진다. 종교, 예술, 유괴 등 예사롭지 않은 언어들이 화면을 지배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파괴된 사나이'는 뼈대만 앙상하다. 기둥만 세워놓은 채 공사를 중단한 건물을 보는 듯하다. 종교, 예술, 인간의 이중성 등에 대한 사유를 전혀 담지 못한 채 관습적으로 흘러간다. 물론 모든 영화가 무거운 사유를 담을 필요는 없다. 장르영화의 장점만 잘 살려도 데뷔작으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파괴된 사나이'에서는 스릴러물의 특징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주영수와 최병철이 맞부딪쳐도 화면은 조용하다. 긴장감이 흐르지 않는다.
지나치기 쉬운 대목이 있다. 제목 '파괴된 사나이'는 주영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최병철 역시 파괴된 사나이다. 어찌 보면 최병철이 딸의 유괴로 인해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주영수보다 더 비극적이다. 영혼이 파괴된 인물이다. 실질적인 주인공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종교와 예술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묵직하게 파헤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흥미로운 캐릭터들은 생기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최병철의 경우가 더 심하다. 그의 내면은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상습 유괴범이 된 배경 설명도 간접적이고 모호하다. 그래서다. 최병철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 유괴한다는 설정은 황당하게 느껴진다. 주영수가 신을 버리는 행동이 느닷없어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파괴된 사나이와 파괴된 사나이의 피 튀기는 대결은 단조롭게 느껴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도 밋밋하고 헐겁다. 주영수는 아내를 살해하고도 아무런 조사를 받지 않는다. 주영수가 차로 최병철의 뒤를 쫓아간 후 거실에서 알맹이 없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 느슨해서 클라이막스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최병철의 살인장면이나, 8년 동안 유괴됐던 딸이 수감된 아빠에게 "한번도 잊지 않고 찾았어요?"라고 묻는 장면도 비현실적이다.
'파괴된 사나이'는 감독이 영화의 인문과 주제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나쁜 결과를 반면교사로 보여준다.
'파괴된 사나이'(감독 우민호)는 유괴가 발단이다. 제목은 일차적으로 목사를 지칭한다. 영화는 사건의 결과를 보여주고 시작한다. 목사가 딸의 유괴로 인해 종교적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그의 영혼이 파괴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목사의 종교적 고민을 아예 생략한다. 대담한 전략이다. 관객의 통념을 뛰어넘는 무엇을 준비한 것일까.
8년 후. 목사는 의료기기 수입상이 되어 있다. 아내(박민경)는 여전히 전단지를 뿌리며 거리를 헤맨다. 목사였으나 이제 신을 버린 주영수(김명민)는 딸을 포기한 상태다. 그 주영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유괴범 최병철(엄기준)이다. 딸이 살아있다고 말한다. 물론 돈을 요구한다. 주영수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피폐한 상태다. 직원 월급도 못 주고, 아내는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다.
유괴는 한국영화에서 익숙한 소재가 됐다. 최근 몇 년간 어린이 유괴를 다룬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됐다. 유괴라는 비인간적 범죄를 통해 신과 용서에 대한 종교적 질문을 던지거나('밀양'), 모성애 혹은 부성애를 부각시키거나('세븐 데이즈', '그놈 목소리'), 빗나간 양심과 복수로 인한 비극의 사슬('용서는 없다')을 다양하게 보여줬다.
'파괴된 사나이'는 몇 가지 눈에 띄는 장점이 있다. 주영수가 딸을 구하기 위해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범인을 일찌감치 노출시킨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주영수가 오프닝에서 목사 가운을 벗어던진 것과 유사하다. 상황은 이제 간결해졌다. 주영수와 최병철만 남는다.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범인이 왜 그랬는가에 초점이 모아진다.
감독은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예술을 끌어들인다. 최병철은 클래식 애호가다. 수억 원이 넘는 초고가 앰프를 사들이는 게 취미다. 그가 아이들을 유괴하는 이유는, 더 좋은 앰프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유괴범이 고상한 취미 생활을 하려고 살인과 유괴를 취미처럼 저지른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묵직해진다. 종교, 예술, 유괴 등 예사롭지 않은 언어들이 화면을 지배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파괴된 사나이'는 뼈대만 앙상하다. 기둥만 세워놓은 채 공사를 중단한 건물을 보는 듯하다. 종교, 예술, 인간의 이중성 등에 대한 사유를 전혀 담지 못한 채 관습적으로 흘러간다. 물론 모든 영화가 무거운 사유를 담을 필요는 없다. 장르영화의 장점만 잘 살려도 데뷔작으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파괴된 사나이'에서는 스릴러물의 특징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주영수와 최병철이 맞부딪쳐도 화면은 조용하다. 긴장감이 흐르지 않는다.
지나치기 쉬운 대목이 있다. 제목 '파괴된 사나이'는 주영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최병철 역시 파괴된 사나이다. 어찌 보면 최병철이 딸의 유괴로 인해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주영수보다 더 비극적이다. 영혼이 파괴된 인물이다. 실질적인 주인공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종교와 예술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묵직하게 파헤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흥미로운 캐릭터들은 생기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최병철의 경우가 더 심하다. 그의 내면은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상습 유괴범이 된 배경 설명도 간접적이고 모호하다. 그래서다. 최병철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 유괴한다는 설정은 황당하게 느껴진다. 주영수가 신을 버리는 행동이 느닷없어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파괴된 사나이와 파괴된 사나이의 피 튀기는 대결은 단조롭게 느껴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도 밋밋하고 헐겁다. 주영수는 아내를 살해하고도 아무런 조사를 받지 않는다. 주영수가 차로 최병철의 뒤를 쫓아간 후 거실에서 알맹이 없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 느슨해서 클라이막스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최병철의 살인장면이나, 8년 동안 유괴됐던 딸이 수감된 아빠에게 "한번도 잊지 않고 찾았어요?"라고 묻는 장면도 비현실적이다.
'파괴된 사나이'는 감독이 영화의 인문과 주제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나쁜 결과를 반면교사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