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어른 울리네

한스 안데르센이 요즘 사람이라면 그는 픽사(Pixar)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상사는 이솝일 것이다. 픽사 스튜디오의 새 영화 '토이스토리 3(8월 5일 개봉)'는 고전(古典) 반열에 오를 만한 동화요, 우화다. 올해 국내 개봉작 중 단연 최고로 꼽을 만한 이 작품은 '영화를 왜 예술이라 칭하는가'란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이 영화, 안 보면 후회가 깊다.

대학생이 된 앤디가 집을 떠나게 되자 그의 장난감들도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선다. 다락에 처박히거나 어린이집에 기증되거나 그도 아니면 버려질 운명이다. 앤디는 장난감들을 다락에 보관하려고 비닐봉투에 넣어두지만 엄마가 쓰레기로 알고 내다버린다. 간신히 봉투에서 탈출한 장난감들은 "버려지느니 새 주인을 만나는 게 낫겠다"며 어린이집행을 택한다. 마냥 행복해 보이던 어린이집에는 버려지고 기증된 장난감들만의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다. 앤디의 장난감들은 가장 어린 아이들의 방에 배정받아 험한 생활을 시작한다.

1995년 '토이스토리', 99년 '토이스토리 2'에 이어 11년 만에 나온 이 시리즈는 새로 나올 때마다 전편을 압도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단연코 시리즈 중 최고작인 이 영화는 귀엽고 유쾌한 동화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우화로 진화했다. 용 대가리로 시작한 '슈렉'이 끝내 뱀 꼬리 된 것에 비춰볼 때 드림웍스가 픽사 따라오려면 멀고도 멀었다.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는 주인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장난감들의 애절한 노력은 눈물겹다. 주인 휴대전화를 장난감 상자에 갖고 들어온 뒤 전화벨을 울린다. 어른이 다 된 앤디가 전화기를 찾아가자 "앤디가 나를 한번 쓰다듬어 줬어!" 하며 흥분한다.

그렇지만 장난감들은 예정된 삶의 갈림길에서 뒷걸음질칠 수 없다. 어두운 다락에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릴 것인가, 어린이집에라도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 앤디로부터 유일하게 간택받은 카우보이 인형 우디 역시 마음은 편하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된 어린이집에는 커다란 곰 인형이 어른 노릇을 하고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조무래기들을 시켜 모든 장난감들을 통제하는 독재자다. 폭압적인 그에게서 딸기향이 나고 이름조차 '많이 안아주는 곰(Lots―O'―Huggin' Bear)'인 것은 이 영화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전환됐음을 말해준다. "우리들은 모두 버림받은 플라스틱일 뿐이야!"라고 외치는 그의 트라우마를 묘사한 장면도 뭉클한 감상을 준다(그러나 그는 결국 서러운 파국을 맞는다).

'토이스토리 3'가 명작인 것은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했던 전작을 훌쩍 뛰어넘는 성장담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주인과 헤어져 길거리에 나선 장난감들이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고, 그 과정에서 서로 힘을 모아 독립해 가는 이야기는 전편이 그랬듯 어른들 피부에 먼저 와 닿는다.

물론 이 영화는 잔잔한 드라마가 아니다. 우스운 장면들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장난감들과 절친했던 앤디의 강아지 버스터는 폭삭 늙어버렸고, 바비 인형은 딱 어울리는 남자 친구 켄을 만난다. 악당들에게 붙들려 모든 기능이 리셋(reset)된 버즈는 친구들에 의해 원래 모습을 찾지만 스페인어로 말하게 된다. 상자에서 눈 코 입만 떼어내 탈출한 포테이토 헤드가 벌이는 코미디도 포복절도급이다. 특히 장난감들끼리 어마어마한 액션을 벌이는 영화 첫 부분은 3D로 봐야 할 것 같다. 톰 행크스(우디), 팀 앨런(버즈), 조안 큐잭(제시), 네드 비티(랏소)의 목소리 연기는 실사 영화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픽사의 작년 개봉작 '업(Up)'이 장외 솔로홈런이라면, '토이스토리 3'는 주자일소 만루홈런이다. 할리우드를 '꿈의 공장'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바로 이런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시네 업데이트] 이토록 매혹적인 아저씨라니… - 96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