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개봉작 다이어리'] 슈렉 포에버

몇 년 전, 극장에서 황당한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금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늦은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좌석에 앉아 있던 나와 친구에게 웬 다정해 보이는 커플이 와서 자기들 좌석이니 비켜달라는 것이었다. "제 자리 맞는데요?" 좌석표를 확인한 나는 표를 흔들며 영화 광고를 보고 있었다. 돌연 더 다정해진 그 커플이 손을 꽉 붙잡고 동시에 나를 노려보며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했다. 거두절미하고 나와 친구는 그날 영화를 그 자리에서 볼 수 없었다. 오전 10시 40분을 오후 10시 40분으로 착각하고 예매한 내 실수였다.

'슈렉 포에버'를 본 건 그 친구와 그녀의 딸 때문이었다. 딸만 둘인 이 친구가 육아에 시달리는 게 안쓰러워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했더니, 대뜸 보자고 한 영화가 '슈렉'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니 나더러 예매하라고 했다. 역시 저녁을 먹은 후, 즐겁게 극장에 들어갔던 친구는 곧이어 이 영화가 '우리말 더빙'이 아닌 '한글 자막'이란 사실에 어이없어 하며 "너한테 두 번 속았다!"고 했다. 나는 5세 아동은 한글을 읽지 못할 수도 있단 생각 자체를 못했었다. 아뿔싸.

배트맨 3편이 '포에버'란 단서를 붙들고 나왔을 때, 배트맨의 결정판을 보나 싶었었다. '배트맨2'의 악당 조커가 워낙 강렬해서, 그 기대감으로 3편을 학수고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편은 이 세상의 모든 기대를 배반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여기서도 끝내지 않고 배트맨4가 나왔을 때는, 끝장까지 보고 헤어진 남자친구가 불현듯 나타나 "자기, 나 안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건, 영화를 보다가 잠을 잔 최초의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내 옆에 팝콘을 든 소개팅남이 있었는데도.

물론 '슈렉 포에버'를 볼 때는, 마녀들이 호박 폭탄을 쏠 때마다 소릴 지르는 다섯 살짜리 때문에 졸 일은 없었다. '슈렉3'를 본 사람들 중, '슈렉 포에버'를 보고 "두 번 속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피오나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 슈렉이 생활에 권태를 느껴 혈기왕성한 괴물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설정도 나쁘진 않았다. 다만 시리즈의 마무리를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다'라는 것에서 끝내는 건 섭섭했다. 배트맨이 최악의 4편을 넘어 '다크나이트'까지 시리즈를 정점으로 밀어올린 것처럼 우리의 녹색괴물 슈렉도 그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이 영화를 보고 두 가지를 느꼈다. 요즘 다섯 살은 한글자막도 읽는다. 그것도 아주 잘! 요즘 유치원들은 3시가 넘어야 끝난다(4시 상영분까지만 우리말더빙이었다). '완전 딴판 겁나 먼 나라'에 살고 있는 꼬맹이들인 것이다.

슈렉 포에버
감독: 마이클 미첼/ 개봉: 7월 1일/ 관객 수: 149만명(11일 현재)

[블로그] 웃을 수 없었던 슈렉4, 유부남에게 일침을 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