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축구만 '예술'이 아니라오

2010 남아공월드컵 우승국인 스페인의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한국과 스페인 수교 6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전시 제목은 〈언어의 그늘〉로,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138점을 선보인다. 1995년에 세워진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과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꼽히고 있다.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은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컬렉션하지 않고, 1950년대 이후 현대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수집해 왔다.

〈언어의 그늘〉전(展)은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에 타피에스와 브루타에스 등 스페인과 각국의 현대미술 작가 60여명의 작품을 '언어'라는 주제로 모았다. 전시는 ▲시(詩) ▲쓰기를 향하여 ▲또 다른 기하학 ▲행동 그리고 언어 ▲정치와 표현의 장 ▲미디어의 힘 ▲연극과 극장 ▲시네마 등 8개의 소주제로 이뤄져 있다.

전시는 시인이기도 했던 벨기에 출신 작가 마르셀 브루타에스의 작품에서 시작한다. 브루타에스의 〈뮤지엄-뮤지엄〉은 작은 금괴를 그린 뒤 그 위에 단어를 적어, 미술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금괴 위에 'butter(버터)'라는 단어를 넣어, 외관은 그럴듯하지만 물질을 추구하는 이면을 암시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안토니 타피에스는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았으며, 초현실주의 작품을 보여왔다. 이번에 전시되는 타피에스의 작품에서도 물질과 사유를 분리하지 않는 작가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스페인은 내전과 독재를 경험한 나라답게 작품 곳곳에서 역사가 묻어나고 있다. 호안 라바스칼의 작품 〈스페인은 달라요〉 시리즈는 과거와 남아공월드컵 우승이 겹쳐지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스페인은 달라요〉는 축구공과 권총, TV 모니터 등을 등장시킨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안토니아 페렐료씨는 "지난날 스페인의 독재정권이 바깥 세계에 축구를 내세워 '스페인은 다르다'고 주장한 슬로건을 비튼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에는 영화와 연극·미디어에 대한 작품도 많이 등장한다. 이그나시 아발리는 제작되지 못한 영화 포스터를 만들어 실재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시각화했다. 상상의 세계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눈앞에 보여줌으로써 관람객들이 가능성과 실재의 혼재(混在)를 경험하게 한다. 에우라리아 발도세라의 설치작품은 날씬한 여성을 거쳐 풍만해지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경의를 말하고 있다.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제 용기를 빛에 비추며 여성의 몸매를 보여줘 흥미롭다. 여성이 많이 사용하는 세제 용기를 통해 성 역할과 여성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흔히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하지만, 작가들은 관람객과 소통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중앙홀에 설치된 미국 작가 리타 맥브라이드의 작품 〈아레나〉는 이런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아레나〉는 스페인의 투우장을 단순히 축소하고 아름답게 디자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발언자가 앉아서 토론하고 의견을 펼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전시 기간 중 〈아레나〉에서는 강연과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전시는 7월 13일부터 10월 3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5000원.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