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 충청도의 산] 성치산 (670m) 충남 금산군 남이면ㆍ전북 진안군 주천면

열두 가지 폭포의 시원한 유혹 속으로
무자치골 제대로 즐기려면 성봉 원점회귀가 나아

금수강산의 줄임말인 금산에 들어서자 사방천지에서 엄청난 초록빛 에너지가 느껴진다. 산들은 수목으로, 들판은 온갖 식물로 녹음의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그 어느 쪽도 순위를 양보할 기세가 아니다. 이제 여름은 절정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나갈 것이다. 오늘은 윤태동(충북등산학교 강사)씨와 나순결(연극배우)씨, 권오식(웨딩홀 운영)씨가 합류했다.  

금산나들목을 빠져나오면서부터 노도 같은 녹음과 함께 인삼 내음이 물씬거리며 밀려든다. 주변경관으로 보아 금산이 인삼재배지로 최적지라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68번 지방도에서 13번 국도로 접어들어 진안 방향으로 향한다. 진악산의 보석사 이정표를 무시하고 직진하다가 용수목삼거리에서 55번 지방도로 꺾어 든다. 잠시 후 왼쪽으로 십이폭포의 거대한 표지석과 함께 봉황천의 징검다리가 보인다. 오늘 산행의 종점인 모치마을이다.

차 한 대를 봉황천변에 세워두고 용덕리로 직진한다. 635번 지방도가 분기되는 흑암 삼거리를 지나 55번 지방도로 계속 진행하노라면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진안군의 경계를 이루는 용덕고개가 나온다. 성치산 산행기점이다.

붉은 병꽃나무 꽃들이 늘어진 고갯마루 쉼터에서 각자 배낭을 정리하고 쉼터 뒤편의 산길을 오른다. 초하의 숲은 완만한 경사에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다. 일행은 주변의 아직 피지 않은 여름꽃들의 이파리를 보면서 이름을 알아맞히기에 열중한다. 산길 옆으로 은난초 몇 포기가 얌전히 피어 있으나 잡목에 가려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아 단념한다. 귀한 야생화일수록 주변의 낙엽이나 나뭇가지를 함부로 치우지 않는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각자 스스로 지키는 약속이다. 좁은 산길이 내내 초록빛 터널로 이어진다. 은난초에 이어 복주머니란(표준어로 개불알꽃)과 은방울꽃 군락이 줄줄이 나타난다. 고개를 들면 머리 위로 쪽동백 흰 꽃들이 입맞춤이라도 해 줄 듯 주둥이를 내밀며 피어 있고 사방에서 뻐꾸기가 울어댄다.

산에 든 지 한 시간 이십여 분 만에 오른쪽으로 전망이 트이면서 운장산 능선이 보인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잠깐씩 나타나는 암릉지대가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능선 왼쪽으로 성봉(648m)이 보이는 조망터에서 잠시 다리를 쉰다. 사방 첩첩 산중에 초록의 농담이 층층이 선명하다. 초하의 산에서 만나는 초록의 향연은 겨울 설화와 또 다르게 화려하고 눈부시다. 정상 직전에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이 성치산 정상이다. 이때까지도 이정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성봉에서 출발한 지 십여 분이나 되었을까. 무자치골의 암반 위로 얕은 계류가 시작된다. 공작의 날개처럼 잘 자란 관중의 우아한 자태가 한동안 시선을 사로잡는가 싶더니 눈앞에 선경이 펼쳐진다. 드넓은 암반 위를 흐르는 맑은 계류에 정신이 다 아찔하다. 송사리 떼가 노니는 물속의 돌 하나를 가만히 들추니 가재 두 마리가 숨어 있다. 여기서부터 우리 모두는 혼을 빼놓고 만다. 십이폭포는 폭포가 열두 곳이어서 십이폭포라는 설도 있고 아니라는 설도 있고 그만큼 폭포가 많다는 설도 있다. 무자치(물뱀)골에 당연히 서식하고 있을 뱀이 나타나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사람이 뱀을 보고 징그럽고 무서워하는 만큼 뱀의 눈에는 사람이 도리어 징그럽고 무서워 그쪽에서 먼저 피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십이폭포의 절경은 마지막 폭포인 죽포동천(竹浦洞天)이라고들 하지만 어느 한 곳 절경 아닌 곳이 없다. 물이 얕으면 얕아서 아름답고 물이 깊으면 깊어서 웅장하다. 이런저런 수식어가 필요 없는 무릉도원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입가경에 욕심도 풍선처럼 부풀고 만다. 눈앞에 펼쳐지는 폭포 하나하나를 느긋하게 감상하지 못하고 다음 폭포는? 다음 폭포는? 하면서 계곡을 다 내려와 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은 우리 탓이 아니라 태고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층암절벽 사이를 흐르는 십이폭포의 절경 탓이다.

삼각점과 함께 헬리포트를 겸하고 있는 정상은 꽤 넓은 공터로 그늘이 없고 한쪽에 조그만 정상표석과 함께 정상 표지판이 서 있다.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정상 표지판은 개인이 만들어다 놓은 듯 작고 허술해 보이나 그것을 만들어 정상에 가져다 놓은 정성은 유감없이 느껴진다. 정상에서 북으로는 서대산, 천태산, 민주지산이 보이고, 동쪽 가까이는 신동저수지가, 멀리는 적상산과 덕유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가, 남으로는 구봉산과 운장산이, 서쪽으로는 대둔산이 조망된다.

정상에서 다시 정상 직전의 삼거리로 내려와 오른쪽 성봉 방향으로 접어든다. 용덕고개에서 성봉까지는 충청북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걷는 길이다. 깊은 산중에 사람 다닌 흔적은 희미한데 전국 각지의 산악회에서 달아놓은 시그널이 적지 않다.

삼거리에서 성봉 방향으로 15분 정도 진행하노라면 북쪽으로 조망이 트인 암릉지대가 나온다. 발 아래로 구석리와 음대리를 지나는 봉황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남쪽으로 시선을 던져 용담호를 찾아보지만 뿌연 연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성봉 직전의 안부까지 오밀조밀한 암릉지대가 이어지고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은방울꽃군락이 자주 눈에 띈다. 성봉이 저만큼 건너다보이는 전망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 도시락을 꺼내자 날것들과 개미떼들이 먼저 달려든다.

성봉으로 가는 길은 깊은 숲 속으로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다가 공터 삼거리와 만난다. 왼쪽 길이 성봉 방향이고, 오른쪽 길은 진안군 용담면 와룡리 방향이다. 한 시간 넘게 걸려 성봉에 도착하기까지 발 아래로 고무골을 내려다보며 암릉 길을 걷다가 은방울꽃군락과 둥굴레군락을 따라 초록빛 이파리가 커튼처럼 드리워진 숲길을 걷는다.

내리막 후에 올라선 성봉에는 성치산 정상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알루미늄 표지판에 성봉이 표시되어 있고 그 뒤로 성봉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 말미에 ‘성봉 두 봉우리에 모두 성(城)자가 들어 있지만 성의 흔적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라는 무책임한 설명에 다들 한바탕 웃는다. 산이 높고 사방 조망이 좋은 것으로 이미 충분히 성의 역할을 하고 있는 봉우리라는 생각에서다.


무자치골은 자연이 만든 폭포 전시장

조용하고 깨끗한 성봉에 앉아 온 산을 독차지한 기분을 만끽한다. 성봉에서 내려선 삼거리 안부에 성치산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이정표가 있다. 왼쪽이 십이폭포 방향이고 정면 길은 신동봉 방향이다. 지도상에 신동봉에서 십이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오늘은 계곡의 시작점부터 보기 위해 바로 무자치골로 하산하기로 한다.

무자치골은 십이폭포가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 길로 경사가 가파르다.

폭포들은 아기자기하면서 오밀조밀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하고 이름 그대로 무자치처럼 암반 위를 소리 없이 지나기도 하고 옥빛 소로 곧추 떨어지며 용틀임을 하기도 한다. 십이폭포의 암반을 따라 초서와 예서, 전서로 침용(沈龍: 용이 누워 잠자는), 운옥(雲玉: 계류에 피어나는 물구름), 명설(鳴雪: 눈발이 휘날리며 우는 것 같은), 풍패(風佩: 계곡에 일어나는 찬바람), 청뢰(晴雷: 맑은 하늘에 천둥 치는), 의하(疑河: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낙하(落河: 은하수가 떨어지는) 등의 한시가 새겨져 있다.

무자치골에서 가장 장관이라는 맨 아래 폭포 암반에 새겨져 있는 죽포동천(竹浦洞天: 무성한 대나무처럼 쏟아지는 폭포의 골짜기)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잘 지은 원두막 세 채가 있는 쉼터를 지나자마자 나타난 폭포가 바로 죽포동천인 줄도 모르고 폭포구경에 넋을 빼다가 “다음 폭포로 고고싱!”을 외치며 산을 다 내려오고 말았으니. 게다가 위에 열거한 한시와 같이 아침에 다르고 한낮과 저녁이 다르고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이 다르고 계절마다 다른 장관을 보여줄 십이폭포를 설명하기에는 턱없는 역부족이다.

다음 폭포 욕심에 성급히 들어서 버린 너덜겅지대를 지나자 더 이상 폭포는 보이지 않고 인삼밭과 더덕밭이 줄줄이 나타나더니 앞이 확 트이면서 모치마을 봉황천을 가로지른 징검다리가 보인다. 폭포에 홀려 폭포처럼 내려오고만 산행에 대한 아쉬움으로 일행은 무자치골을 돌아보며 쉽사리 걸음을 옮기질 못한다. 아무래도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폭포트레킹만을 목적으로 무자치골을 다시 찾아야 할까 보다.


산행길잡이

○ 용덕고개~성치산 정상~성봉~무자치골~십이폭포~모치마을 <6~7시간 소요>
○ 모치마을~십이폭포~무자치골~성봉~신동봉~십이폭포~모치마을 <3시간 이상 소요>
○ 모치마을~십이폭포~무자치골~성봉~신동봉~사기소 <3시간 이상 소요>

산행가이드  성치산 정상은 엄밀히 따지면 전북 진안에 속하지만 능선이 경계를 이루고 있고 대표적인 명소인 십이폭포가 금산 땅이다. 성치산은 잠깐씩 나타나는 전망터인 암릉지대를 제외한 산행구간 내내 햇빛을 가린 깊은 숲 터널로 걸을 수 있는 산이다. 크게 위험한 구간은 없으나 이정표가 드물어 미리 지도상의 등산로를 충분히 숙지하고 가는 것이 좋다. 무자치골의 십이폭포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용덕고개~무자치골의 산행보다 무자치골에서 시작해 성봉으로 올라 신동봉을 거쳐 십이폭포의 첫 폭포로 내려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태고의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무자치골은 폭포의 전시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시인묵객들이 새겨놓은 멋들어진 한시를 찾아내고 나름 그 뜻을 해석하는 일도 재미있다. 무자치골에 서식하고 있다는 무자치라는 뱀은 독성이 없는 물뱀이기는 하지만 물이 흐르는 미끄러운 암반에서 길이가 1미터에 달하는 뱀을 만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여름 장마철에는 반드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봉황천변에 차를 세워두는 일도 장마철에는 금해야 할 사항이다. 봄이면 화전놀이, 여름철의 피서, 가을철의 단풍놀이에 이보다 더 적합한 산도 흔치않겠다.

용덕고개를 들머리로, 모치마을을 날머리로, 혹은 역방향으로 산행을 할 때는 두 대의 차로 이동하는 방법과 금산읍의 금산개인택시(041-753-7373)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택시로 이동하기에는 거리가 먼 편이다.  


교통

대중교통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금산읍행 고속버스(2시간 40분 소요)를 이용하거나 대전을 경유하여 금산읍에서 양배-하금 간 시내버스(한일교통)를 이용한다. 현재 대전의 고속, 시외버스터미널의 공사로 인해 임시시외버스터미널(042-624-4452)을 이용(2011년 예정)해야 하며 금산행 시외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금산읍에서 출발, 금산읍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의 시각은 대체로 불규칙하다. 양대-하극 간(06:20, 08:20, 10:20, 12:50, 14:10, 15:40, 17:50, 19:00) 버스를 이용하여 십이폭포에서 내린다. 금산읍으로 돌아올 때는 인근 각 종점(대양리, 활골, 관운리)에서 출발해 구석리(모치마을)를 통과하는 버스(06:40, 08:40, 10:50, 13:30, 14:20, 14:50, 16:30, 18:30, 19:20)를 이용한다.

승용차 
금산나들목에서 68번 지방도(금산 방면)를 지나 13번 국도 보석사 방향~용수목삼거리에서 55번 지방도로 좌회전~모치마을 십이폭포 표지석. 십이폭포를 날머리로 할 경우 계속 직진해서 흑암삼거리를 통과해 용덕고개를 산행기점으로 한다.  


숙식 (지역번호 041)

식당  영동 방면 금강변에 어죽집이 많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저곡식당(752-7350), 종가집(752-0229), 금강가든(752-7525)의 민물고기 국물에 인삼과 채소, 수제비, 소면, 쌀을 넣어 끓인 인삼어죽이 유명하며 민물고기 매운탕과 도리뱅뱅이도 별미이다.

숙소  남이면의 금산산림문화타운(http:// forestown.geumsan.go.kr) 내에 남이자연휴양림(753-5706)의 숙박시설과 금산읍의 인삼호텔(751-6200~1) 외에도 장급여관과 모텔들이 있다. 또한 면내의 인삼마을 팜스테이를 이용하여 민박과 겸해 인삼에 관련한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http://www.hongdofarm. co.kr)

볼거리 남이면 내에 산림에 관한 다양한 체험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금산산림문화타운(남이자연휴양림)과 진악산 보석사의 천년 은행나무와 전나무길이 볼 만하며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의 적벽강이 절경이다.

/ 글·사진  차은량 수필가 산문집 <꽃멀미>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