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개봉작 다이어리'] '해바라기'하는 게 연애라면 결혼은 꺾어서 평생 품는 것

유명 결혼정보 사이트에 가입한 친구가 있었다. 100번 넘게 선을 보고 난 후였다. 프로필 사진을 잘 찍는다는 명동 어디쯤에서 사진도 찍었다. 5년 전 일이다. 내 주변에는 유달리 결혼 안 한 여자들이 많다. 면면을 보자면 성격 좋고, 개성 있고, 예쁘고, 멀쩡한 직업이 있는데도 그렇다. 이렇게 말하면 소개팅시켜 달라고 조르던 남자들이 그 많은 디테일들을 무시한 채 질문한다. 예뻐? 진짜 예뻐? 그러니까 남자 관점에서 예쁘냐고! 말을 말자.

세상에 못생긴 남자들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물은 많다(반대로 안 예쁜 여자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일례로 아담 샌들러. 잘 생겼다 말하긴 힘든 얼굴이다. 잭 블랙. 개성 있지만 못생겼다. '사랑의 블랙홀'의 빌 머레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이 로맨틱 코미디물의 남자주인공 나이가 오십쯤 되고, 머리까지 시원하게 벗어졌다면 상황은 어떨까. 더군다나 세상 물정을 알 만큼 아는 이 남자가 눙치고, 약 올리고, 직설적이기까지 하다면? 영화는 장르의 구태의연함을 벗고, 독특한 리듬의 뉘앙스를 갖게 될 것이다.

배우자 구함. 꽃미남 원하는 분 미리 사절. 돈방석 원하는 분 빠이빠이. 석사 학력 이상자 접근 금지. 호감형도 비호감형도 아닌 어지간한 외모의 여성 환영. 인터넷에 공개구혼장을 올린 이 남자 '진분(갈우 분)'의 이상형은 한 마디로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남만큼 평범해지기 위해 토익 800 이상, 학점 4.0 이상을 맞아야 하는 '요즘'의 평범함은 참으로 힘들고 험한 길이다. 무덤 자리 팔 생각에 맞선 나온 묘지판매상이 있질 않나, 자신을 '저가주'에 비유하는 주식중개인이 있질 않나, 이 남자의 맞선은 첩첩산중이다. 그런 형국이니 직업이 스튜어디스인 '소소(서기 분)'를 보고 진분이 외치는 대사에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혹시 비행기 팔러 나온 건 아니죠?"

'분쟁 제로기'라는 괴상한 발명품으로 백만장자가 된 진분의 '맞선체험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다. 유부남을 사랑하는 소스는 홧김에 이 남자와 맞선을 보고, 우여곡절 끝에 홋카이도까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여자로 등장한다.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 갈우가 중국의 국민배우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흔히 '국민'이란 호칭이 붙는 배우들의 특징을 여럿 가지고 있었는데, 연기력, 스크린 장악력과 자신의 맥박을 영화의 리듬에 싣는 독특한 호흡법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연애는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것'에서 '연애 잘하는 게 돈 버는 것'으로 연애에 대한 정의가 180도로 바뀐 친구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의 해바라기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연애란 누군가에게 무작정 '해바라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결혼은 그 빛나는 해바라기를 꺾어 씨앗까지 전부 꺼내 먹고도 계속 품고 다녀야 한다는 것임을 말이다.

쉬즈 더 원

감독: 펑 샤오강/ 개봉: 7월 15일/ 관객 수: 80명 (18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