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고정금리형 주택대출' 골라잡는 시대 온다

앞으로 은행 창구에서 보다 다양한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재 국내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90% 이상이 변동금리형이며, 고정금리형 상품은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이 거의 유일하다. 국내 은행이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것은 은행들이 대출 재원(財源)을 주로 단기 차입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에도 대표적인 장기 자금조달 수단인 '커버드 본드'(covered bond) 발행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커버드 본드 발행이 활성화될 경우 일반 은행들도 머지않아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주택금융공사는 이달 초 해외에서 5억달러 규모의 커버드 본드 발행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국내에서 발행될 소위 '한국형 커버드 본드'는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을 받는 독특한 구조로 짜여질 전망이다.

◆커버드 본드란

커버드 본드란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의 일종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담보자산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현재 주택금융공사에서 발행하는 MBS(주택저당증권)와 비슷한 형태다. 즉, 일반인들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려가는 1억원, 2억원 규모의 대출을 모아 채권을 발행한 뒤 대출자들이 갚아나가는 이자를 받아다 채권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구조다.

단, 커버드 본드는 채권의 담보가 되는 주택담보대출을 발행은행이 설립한 SPC(특수목적회사)에 양도함으로써 만약 발행은행이 망하더라도 다른 채권자들이 SPC의 자산에는 손을 못 대도록 막아놓고 있다. 투자자들을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셈이다. 또 대출자들이 만기 이전에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할 경우 원금이 조기상환될 수 있는 MBS와 달리 만기가 보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MBS의 경우 만기 10년짜리 MBS에 투자하더라도 대출자들이 조기에 주택담보대출 원금을 상환할 경우 채권이 조기에 상환될 수 있는 데 반해, 커버드 본드는 정해진 만기까지 정기적으로 이자를 받다가 만기에 원금을 일시 상환해 가는 구조다. 발행회사 입장에서는 이처럼 투자자들에게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대신, 보다 낮은 금리를 주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럽에서는 100년 이상 시행돼 온 금융기법이다.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한국형 커버드 본드 발행 초읽기

국내에서 커버드 본드가 이슈가 됐던 것은 지난 2009년 5월 국민은행이 아시아 최초로 커버드 본드를 발행했다고 밝히면서다. 하지만 당시 채권금리를 너무 높게 책정하는 바람에 '그 정도 금리를 주고 굳이 커버드 본드를 발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적정성 논란이 일었다. 이 건은 올해 금감원의 국민은행 감사에서도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이번에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일부 은행들이 아이디어를 짜낸 소위 한국형 커버드 본드는 주택금융공사가 채권에 대한 보증을 서는 독특한 구조다. 만약 커버드 본드를 발행한 은행이 망할 경우 우선적으로 주택금융공사가 보증을 해주고, 주택금융공사마저 망하면 비로소 SPC의 자산에서 투자금을 돌려주는, 삼중(三重)의 안전장치〈그래픽 참조〉를 장착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대외 공신력이 높지 않아 커버드 본드의 형식을 취하고도 해외에서 높은 금리를 주고 커버드 본드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한국형 커버드 본드는 정부 기관인 주택금융공사가 개입해 보증을 해줌으로써 해외에서 보다 낮은 금리로 발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보고 있다.

◆단기·변동금리 위주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지각변동 예상

한국형 커버드 본드 발행의 의미는 단순히 은행들이 보다 값싼 자금조달 수단을 확보하게 됐다는 데 있지 않다.

커버드 본드는 은행이 장기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보통 만기가 7년 이상으로 발행되고, 무엇보다도 만기까지는 채권을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만기 10년짜리 커버드 본드를 연 5%의 금리를 주고 발행하면 은행은 10년 동안 연 5%의 이자 비용만 내고 안정적으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지금까지 국내 은행들은 주로 대출자금을 정기예금 같은 단기 수신에 의존해 왔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전체 수신에서 정기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8.1%에 달했다. 이처럼 단기 차입에 의존하다 보니 장기간 고정금리로 대출금리를 받아야 하는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상품 출시는 엄두도 못 냈다.

즉, A은행이 만기 1년짜리 정기예금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금리 연 5%·만기 10년짜리 고정금리형 대출상품을 판매하면 이자는 매년 똑같이 5%씩 들어오는데 중간에 기준금리가 인상돼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5%를 초과할 경우 역(逆)마진이 생기게 된다. 이런 위험을 지지 않기 위해 은행 입장에선 고정금리형 대출상품 대신 변동금리형 상품을 취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커버드 본드가 활성화되면 변동금리형 위주의 국내 주택담보대출 시장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은행권에서 보다 다양한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한다. 은행 입장에서도 단기 차입을 통해 보통 6개월마다 대출금리가 변하는 변동금리형 대출을 해주기보다, 장기 자금을 조달해 장기간 고정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편이 위험관리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 특히 커버드 본드를 발행하면 은행의 재무제표에서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주택담보대출 자산이 유가증권(MBS)으로 전환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은행의 예대율을 낮춰주고 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커버드 본드 발행은 은행 입장에서 여러모로 매력적인 카드인 셈이다.

김선욱 우리은행 자금부 차장은 "한국형 커버드 본드 발행은 단기채 중심의 국내 채권시장과 변동금리 위주의 국내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커버드 본드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의 일종으로, 채권 투자자 입장에선 발행회사가 망하더라도 최우선적으로 담보자산에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 특징이다. 일반 채권보다 안전하기 때문에 발행회사는 상대적으로 싼 금리를 주고도 시중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