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 7년 전 약속 지켰다

강우석 감독이 7년 전 약속을 지켰다.

'실미도' 촬영이 한참이던 2003년 여름, 강우석 감독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는 정재영을 바닷가로 불러냈다. 밤새 소줏잔을 기울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세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대전제는 절대 초조해하지 말라는 것. 눈 앞의 인기에 연연해하며 작품을 고르지 말고, 돈에 의해 움직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얼굴 좀 알려졌다고 이 CF, 저 CF하면서 제 이미지를 갉아먹는 일을 최대 금기 사항으로 내걸었다.

그 뒤 정재영은 강 감독의 이 '실미도 지령'에 충실히 따랐고, 강 감독 또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진 감독에게 '연기력 만큼은 주인공감'이라고 밀어붙였다. '외모는 안되지만'이라는 강 감독 특유의 위트넘치는 독설 추천사가 막강 파워를 발휘했다. 이 덕분에 정재영은 영화 '아는 여자'를 통해 당당히 첫 주연 테이프를 끊었다.

그리고 7년 후,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 약속을 당당히 지켰다. 21일 150만명을 돌파한 '이끼'를 통해 정재영을 명실상부 충무로 대표 배우로 거듭나게 만들어줬다.

정재영은 그간 '김씨 표류기' '신기전' 등에서 싱크로율 100％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평단의 호평과 흥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지는 못했다. 충무로 빅스타로서 '2％ 부족한' 느낌을 줬던 것도 사실.

때문에 '이끼'의 기획 초기에 강 감독 주위에선 우려의 소리도 높았다. 동명의 웹툰 원작에서 정재영이 맡은 이장 캐릭터가 워낙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막강 내공을 발휘해야 했기 때문이다. 티켓 파워에서 힘이 딸릴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뒤따랐다.

그러나 강 감독은 정재영의 연기력에 대한 신뢰 속에서 과감히 정재영 카드를 골랐다. 앞서 제작한 영화들이 줄줄이 쓴맛을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흥행에 목말랐던 강 감독으로선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었으나, 도전에 능한 미다스의 손답게 모험을 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져, '이끼'는 21일 올 개봉 한국영화 중 최단기간 150만명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강우석 감독은 "'이끼' 대박의 1등 공신은 정재영"이라며 "연극무대에서 처음 봤을 때 전율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배우 정재영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정재영의 시대가 열렸다. 충무로를 호령하며, 몸값도 급상승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더불어 "유일한 단점은 너무 소탈하다는 것이다. 이젠 배우처럼 꾸밀 줄 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목에 힘도 좀 주고 다녀라"는 애정어린 잔소리도 잊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