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中, 계속 쾌속 항진" 對 "일시적 역전일 뿐"

2003년 일본을 추월한 뒤 7년 동안 세계 1위를 질주하던 한국 조선업이 올해 상반기 중국에 추월당했다. 중국 조선업계의 상승세로 미뤄 올해 전체 성적에서도 한국은 중국에 밀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지금의 판세가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본격적인 한·중(韓中) 역전의 시작인가 하는 점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아직까지는 중국에 1위를 내줄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중국 조선업계의 수주 실적이 정상적인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조선소들이 금융위기 이후 수주한 물량의 50~60%가 중국 정부 발주물량이어서, 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회복되면 1위 탈환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은 LNG선과 초대형유조선 등 돈 되는 고가(高價) 선박 건조에선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경쟁상대가 안 된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한·중 조선 역전(逆轉)'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진단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건조 능력을 확장하고 이를 자국의 물량으로 채우는 중국의 국력, 그 물량을 소화하며 기술을 진화시키는 관련 기업들, 그리고 2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파격적인 선박금융으로 해외물량을 따오는 '돈의 힘'이 중국 조선업의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에도 투자 늘려… 일감은 중국 정부가 해결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모든 조선소가 투자를 중단했던 2008~09년에도 중국 조선업계는 확장을 계속했다. 양쯔강 하구의 창싱다오(長興島)에서는 지금 대형선박 23척을 건조할 수 있는 도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톈진(天津)과 다롄(大連) 등 발해만 지역에선 건조능력을 900만t에서 1100만t으로 늘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주문 물량이 크게 줄어든 불경기에 오히려 시설 투자를 늘린 중국 조선업체들은,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엄청난 위기를 맞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중국 정부가 '국수국조'(國需國造·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 손으로 만든다)라는 방침 아래, 자국 조선소들이 일감 부족으로 위기를 맞을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 조선소 도크의 절반 이상은 이런 내수(內需) 물량이 차지한다. 덕분에 올해 상반기 중국은 해운업계 부동의 발주 1위였던 그리스를 밀어내고 발주량 1위에 올랐다.

산업연구원의 홍성인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중국 조선업체들이 건조 경험을 계속 축적하고 있는 게 두렵다"며 "한 번에 3척을 수주했다면 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산성과 비용절감 노하우가 쌓여 마지막 세 번째 배를 만들 때는 첫 번째 배에 비해 생산성이 15% 이상 올라가는 게 조선 업종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소들의 생산성이 당장은 낮더라도 지금처럼 건조경험을 계속 쌓아가면, 수주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LNG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도 중국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2005년 중국 최초로 LNG선을 건조했던 후동중화조선(扈東中華造船)은 최근 이란국영석유회사 NITC로부터 척당 2억~2억2000만달러에 이르는 LNG선 6척을 수주했다. 이는 중국의 첫 LNG선 수출이다.

한국의 SK해운은 지난달 30일 다롄선박중공(大連船舶重工)에 32만t급 초대형유조선 2척을 발주했다. 한국해운사가 중국 조선소에 고가의 초대형유조선을 발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남대 중국통상학과 정상은 교수는 "중국 조선업체들이 물량에서 한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한 데 이어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기술 면에서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파워 앞세워 배값 싸게 대출…해외선주들 유혹

하지만 중국 조선업계의 가장 강력한 지원군(軍)은 중국의 막강한 '달러(dollar) 파워'다. 한국해양대의 이기환 교수는 "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선진국 은행의 선박금융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중국 금융기관들은 해외의 선주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돈을 대주는 대신 중국 배를 사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선주협회 양홍근 이사는 "중국은행들은 선박 자금의 90% 대출은 기본이고 선주가 건조 취소를 하지 않도록 중도금에 대한 지급보증까지 서고 있다"고 말했다.

선박대금의 90%까지 미리 빌려주는 선박금융은 2007년 세계 상위 10대 금융기관의 실적이 총 640억달러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91억달러로 급감했다. 배를 사고 싶어도 돈을 구할 수 없는 선주(船主)들로서는 중국은행들의 이런 제안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산업은행 선박금융 관계자는 "국내 조선소에 배를 발주하려는 해외선주들 중에는 '우리도 중국과 같은 조건으로 대출해주지 않으면 중국 쪽으로 가겠다'고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와 은행들이 거대한 달러 보유고를 안전판 삼아 자국 조선소를 대신해 세일즈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선박금융이 활기를 띠면서 작년 중국 조선업계의 선박금융규모는 89억달러로, 54억달러에 그친 한국을 압도했다. 특히 한·중 간의 기술격차가 좁혀질수록 선박금융의 중요성은 양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홍성인 연구위원은 "거대한 물량과 정부의 지원책, 달러 파워가 '삼위일체'로 중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급격하게 끌어올리고 있다"며 "한국 조선업체들은 10년 안팎으로 평가되는 양국 기술격차에 안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